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규철은 이번에도 급식비를 내지 못 했습니다. 점심시간인데도 학교 식당으로 가지 않고 도서실로 향하는 규철의 어깨는 축 쳐져 있습니다. 규철의 담임인 박선미 선생은 규철을 볼 때마다 25년 전 중학교 삼학년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박선생이 다닌 중학교는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사립여중학교였습니다. 중학생인 선미가 가장 싫어한 시간은 음악시간이었지요. 음악실기시간은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선미가 앞에 나가서 음정, 박자, 리듬이 제각각 따로 노는 노래를 진땀을 흘리며 부르자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자지러졌습니다. 그 때, 왁자지껄한 소음의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오는 향기로운 노랫소리가 있었지요. 선미는 사람의 목소리가 꽃보다 향기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그 향기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음악선생인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선미는 그 노랫소리에 홀려 입을 헤 벌리고 선생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선미는 음악시간을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지요.
졸업을 앞두고 수업료를 낼 마지막 기한까지 넘기고 있었지만 선미는 엄마를 조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간경화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미는 아버지의 병보다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이 더 걱정이었지요.
“선미야, 이것 받아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시간, 담임선생님께서 선미를 조용히 불러 종이쪽지 한 장을 내미셨습니다. 선미의 이름으로 된 수업료 영수증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무런 말도 않으시고는 선미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셨습니다. 선미는 담임선생님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가슴에 꿈 하나를 깊이 새겼습니다. 꼭, 우리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겠노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선생님처럼 되겠다고 말입니다.
어두운 표정을 한 규철이 교무실의 문을 밀고 들어옵니다.
“규철아, 어머니께서 급식비를 내셨더구나. 어제 스쿨뱅킹통장에 급식비가 입금되었다고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밀린 급식비와 남은 급식비가 모두 선납된 사실을 규철은 모릅니다. 박선생이 몹시 미안해하는 규철의 어머니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몰래 한 일이니까요.
규철이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한창 배고플 나이의 중학교 삼학년 남자애들이 먹성 좋게 밥을 먹고 있습니다. 박선생의 눈에는 그 모습이 그 어떤 광경보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김옥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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