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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자유를 부르는 주문 ‘까르페 디엠!’

등록 2007-11-26 18:27

나의 자유 이야기 /

아들 방을 청소하다가 구석에 처박혀 있는 가방을 열어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가방에서 옛 시조들이 적힌 학습지 두 장과 어린이 신문 서너 장, 그리고 흙먼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겨진 학습지에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로 시작되는 양사언의 시조가 나와 있었다. 아들 녀석은 느낌을 적는 빈 공간에 이렇게 써 놓았다. ‘오르고 또 오르면 언젠가는 누구나 오를 수 있으므로 적당히 오르자’ 오오~ 분명히 이건 학교 선생님이 요구하는 답이 아니리라.

밤 10시가 지나 귀가한 수험생 큰 딸이 식탁에서 간식을 먹는다. 넌지시 물어 보았다.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 ’를 아느냐고. 당연히 아는 시조란다. 수험생이 그걸 모르면 말이 안 되겠지. 그 시조가 뜻하는 바도 아느냐고 물었다. ‘누구나 쉬지 않고 노력을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뜻이란다. 큰 딸은 철부지 동생에게 공부 좀 제대로 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은 “그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열심히 노력만 하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라고 물었다. 큰 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경험상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 나이가 되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이제 인생 12년차인 초딩 아들이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 적당히 오르자’는 말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루어질 일을 성급하게 미리 할 필요가 없다는 말 아니던가. 남편은 동생이 세상 이치를 빨리 깨쳤다며 아들 편을 들었다. 아들은 득의만만한 표정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의 반에는 벌써 중학교 3학년 과정을 선행 학습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고 한다. 아들은 그 친구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친구들이랑 신나게 축구도 맘껏 못하니까 말이다. 한 아이는 엄마가 시키니까 할 수 없이 하는데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대답은 아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부족했다.

내 아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곧 중학교 공부는 중학생이 되면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인데, 왜 미리 고생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느긋한 성격으로 오늘도 축구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참된 자유란 현재에 만족하고 충실하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보니 아들이야말로 ‘오늘을 잡아라,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어구를 아주 잘 실천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나도 문득 자유로워졌다.

홍윤정/성남시 수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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