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의식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번쯤 꿈꿔 본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우리들을 안내한다.
프란치스카 부흐 감독의 ‘에밀과 탐정들’ 중 한 장면
프란치스카 부흐 감독의 ‘에밀과 탐정들’ 중 한 장면
이전에 한 ‘낙서’라는 죄 때문에 돈 잃어버리고도 신고 못한 에밀
‘원죄의식’에서 동화의 실마리 찾아
소년들, 도둑쫓아 삼만리 떠나는 기발한 한편의 탐정소설로
‘원죄의식’에서 동화의 실마리 찾아
소년들, 도둑쫓아 삼만리 떠나는 기발한 한편의 탐정소설로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 캐스트너의 <에밀과 탐정들>
에리히 캐스트너의 <에밀과 탐정들>(1929년)은 한 소년이 자신의 돈을 훔쳐간 도둑을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잡는다는 내용의 동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이야기를 지어내기 위해서 작가는 무척 고심한다.
캐스트너의 책은 ‘절대로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다’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하는데(이 부분을 뛰어넘지 말고 읽기 바란다), 여기서 그는 이야기 짓기의 어려움을 은근히 내비친다. “에밀의 이야기는 나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원래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러면서 남태평양을 무대로 하는 소설을 시도했다는 둥, 자신이 쓴 글을 놓고 식당 웨이터와 논쟁을 벌였다는 둥, 뛰어난 이야기 소재가 떠오를 때까지 방황한 경험을 그럴 듯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캐스트너는 책상다리를 보는 순간 에밀 티쉬바인(책상다리라는 뜻)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린다. “나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려주기 전에, 이야기의 부분부분이며 문득 떠오른 생각들이며 이야기를 이루는 요소들을 나에게 날라다 준 조그만 폭발을 여러분에게도 실제로 보여 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캐스트너의 이야기를 폭발시킨 결정적 뇌관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원죄(原罪) 의식’이다. 아니, 동화에서 원죄 의식이라니! 끔찍한 해석이라고 나무랄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찌하겠는가. 캐스트너가 이 화두를 덥석 잡는 순간, 오랜 뜸들이기에서 벗어나 불붙은 폭죽처럼 이야기는 시작되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아무도 예상치 못할 통쾌한 결론에 이른다.
원죄 의식, 그것은 서사 구조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에밀의 이야기를 보자. 에밀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외할머니께 전달할 돈을 갖고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에 탄다. 낯선 사람이 준 초콜릿을 먹고는 잠에 떨어져 돈을 몽땅 털린다. 에밀은 역에서 그 사람을 발견하고 추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작은 도움조차 요청하지 못한다. “끔찍하다. 경찰한테도 도와 달라고 할 수가 없다니” 하고 한탄할 뿐이다. 고향인 노이슈타트에서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공원에 있는 카를 대공의 동상에 색연필로 새빨간 코와 시커먼 콧수염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밀은 기차 안에서 곯아떨어졌을 때도 동네 경찰 에쉬케 경사가 자신을 마구 쫓아오는 해괴한 꿈을 꾼다. 꿈속에서도 원죄 의식이 그를 괴롭힌 것이다.
캐스트너가 에밀의 원죄와 그 의식에 사로잡힌 상태를 이야기에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동화는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아니, 이야기 자체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원죄 의식 때문에 에밀은 도둑을 계속 미행만 하면서 기회를 엿봐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베를린에서 만난 아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아이들은 대단한 탐정들이나 된 것처럼 작전 계획을 짜고 도둑을 감시하며 연락망을 갖추고 활동 자금까지 마련한다. 이야기가 술술 풀리는 것이다. 이야기가 탄력을 받았으니, 절로 기발한 결론에 이를 판이다.
원죄의 설정과 그 의식은 모든 이야기에 극적인 효과를 몰고 온다. 그것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 시작하는 기독교적 인류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부친 살해의 원죄로 비극적 상황에 쫓기는 신화의 주인공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다. 원죄 의식은 ‘손상된 주체’를 설정한다. 이는 고대 철학의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플라톤은 절대 선인 이데아의 세계에 비해 속세의 영혼을 ‘손상된 사유 주체’로 설정하는 방식을 써서, 철학 이론을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할 수 있었다.
캐스트너 역시 서구 의식에 잠재하는 원죄라는 ‘이야기의 묘약’을 써서 동화를 흥미진진하게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인 캐스트너는 또한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에 카메오 출연한다. 실제로 신문 기자였던 캐스트너는 동화 속에서 에밀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기자 역할로 깜짝 등장한다. 주인공에게 원죄의 덫을 씌운 조물주가 속세에 임해 사건 해결과 구원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같이 말이다. <에밀과 탐정들>은 범인 추적의 이야기 만큼이나 흥미로운 사유의 갈래들을 제공한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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