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 책세상 / 〈당나귀 귀〉
세상은 갈수록 ‘경쟁력’이라는 말이 판을 친다. 마치 이 세상은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만이 살아야 하는 세상인 것처럼, 그런 사람만이 자유도 권리도 행복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몰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좋은 머리를 갖지 못했거나 행동이 느리거나 남들과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더욱 그런 아이들을 감싸고 격려해 줘야 할 가정과 학교에서조차 철저히 무시당하고 심지어 학대까지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쎄르쥬 뻬레즈의 3부작 <당나귀 귀>, <난 죽지 않을 테야>, <이별처럼> 중 제 1권에 해당하는 작품이다.주인공 레이몽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학습능력이 부족하고 행동이 굼뜨다는 이유로 늘 무시당하고 욕을 먹는다.
특히 아버지는 레이몽이 학교에서 낙제 점수를 받아오거나 시키는 일을 재빨리 하지 않으면 가죽 혁띠를 풀어 아이가 기절할 때까지 매질을 해댄다. 매질을 당한 레이몽은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으며, 뼈 마디마디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파서 닷새 동안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그래서 레이몽은 자신의 아픔을 멈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엄마 아빠가 빨리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똑똑한 아이들만 칭찬하는 어른들…
세상보다 조금 느린게 잘못인가요? 우릴 이해해주는 ‘진짜 어른’ 되세요
레이몽에게도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자기 집의 생계를 위해 죽어가는 돼지를 위해 기도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동생을 끔찍이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지만, 빵집 아저씨를 제외하곤 아무도 레이몽을 알아주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빵집아저씨가 자신에게 믿음을 주었기에 레이몽은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고,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아픔을 모두 이야기한다. 그래서 레이몽은 빵집아저씨의 용달차 냄새만 맡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레이몽이 얼마나 간절히 누군가를 원했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머리가 나쁘다는, 행동이 느리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레이몽처럼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는 아이들이 꽤 있다. 이 책은 어른들에게 이제 손을 내밀어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으라고 말한다. 그래서 더 이상 힘이 없고, 행동이 느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이해 못하는 진짜 바보는 되지 말라고 어른들에게 너무나 애절하게 말하고 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자신의 주변에 소외당하고 있는 친구들을 살펴보거나, 3부작의 나머지 작품인 <난 죽지 않을 테야>, <이별처럼> 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 봐도 좋겠고,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으며 행여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준 일은 없었는지 얘기 나눠 봐도 좋을 것이다.
주상태/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회원, 서울 중대부속중 교사
세상보다 조금 느린게 잘못인가요? 우릴 이해해주는 ‘진짜 어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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