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
창밖에는 봄빛이 가득하다. 등 뒤에 와 닿는 푸르른 기운을 느끼며 그림책 한 권을 펼친다. 책장을 여니, 이곳은 더욱 환하다. 언덕바지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이는 마을에는 바야흐로 꽃들이 한창이다. 자두나무, 벚나무, 배나무, 피스타치오 나무…. 마을은 온통 꽃동산이다. 그 사이로 질박한 모양의 집들이 둥지를 틀고 있고, 여기저기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과 나귀들이 보인다.
일본 작가 고바야시 유타카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길지연 옮김, 미래M&B)은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시골 마을 파구만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회학부에서 공부하고 나중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작가의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십여 년 동안 중동 지역과 아시아 여행을 자주 했는데, 이때의 체험이 글과 그림으로 담긴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고즈넉한 시골
자두나무 벚나무 온통 꽃대궐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곳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네…
다음 면으로 넘어가니, 계절이 바뀌어 곧바로 여름이다. 풍성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무르익은 과일을 수확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이른 아침, 야모는 처음으로 아빠를 따라 읍내로 간다. 당나귀 뽐빠의 등에는 달콤한 자두와 새빨간 버찌가 가득 실려 있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복잡한 거리, 코끝을 자극하는 온갖 냄새, 울긋불긋한 물건들을 내놓고 흥정하는 사람들. 시끌벅적한 읍내의 시장 광경은 소년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한다.
처음엔 수줍고 서툴렀지만, 야모의 장사 솜씨가 제법이다. 어느덧, 군인으로 끌려간 형의 몫까지 의젓하게 해내는 것이다. 어린 소년에게 파구만 버찌의 새콤달콤한 맛을 칭찬해 주는 사람들의 배려가 속 깊고 정겹다. “남쪽 지방에선 전투가 꽤 심하다던데.”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조심스레 걱정이 묻어난다. 옆에서 귀 기울이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린 듯 아빠는 깜짝 놀랄 만한 계획이 있다고 얘기해 준다. 아빠는 과일을 판 돈으로 새하얀 새끼 양 한 마리를 산다. 이들이 고운 노을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가슴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야모는 새로운 가족이 된 새끼 양에게 ‘바할’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봄’이라는 뜻이다. 꽃 피는 봄이 다시 찾아와, 형이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해 겨울, 마을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면에는 달랑 이 한 마디 말뿐이다. 메마른 모래사막을 연상시키듯, 누런 바탕칠 말고는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고즈넉하던 작은 마을도, 화사한 꽃과 탐스런 열매를 뽐내던 나무들도, 성실하고 순박하던 사람들도 사라지고 없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럴 수밖에 없겠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을 덧붙일 수 있으랴. 슬픔이 너무 클 때는 말문이 막히는 법이다. 때로는 차라리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1979년 12월에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평화롭던 이 마을을 영영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2001년에는 다시 미국의 침공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을 앗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던 이 마을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선 지금도 비극이 진행 중이다.
오석균/도서출판 산하 주간 mitbach@hanmail.net
자두나무 벚나무 온통 꽃대궐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곳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네…
오석균/도서출판 산하 주간 mitba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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