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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태안주민 세번째 희생…타오르는 절망과 분노

등록 2008-01-18 15:53수정 2008-02-04 10:19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양식장에 피해를 입은 것을 비관해 음독자살한 고 이영권씨의 장례식이 14일 태안군청에서 군민장으로 진행되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양식장에 피해를 입은 것을 비관해 음독자살한 고 이영권씨의 장례식이 14일 태안군청에서 군민장으로 진행되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집회도중 분신 기도 중태…벌써 3번째 희생자
삼성 ‘성실 대응’ 원론 되풀이…무책임에 부글부글
태안 원유유출 사고로 태안 주민이 집회 도중 분신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18일 오후 1시50분께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태안군수산경영인회관옆 도로에서 지창환(56)씨가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지씨는 이날 태안지역 어민들로 구성된 ‘태안유류피해 투쟁위원회 주최 특별법 제정촉구 대정부 결의대회’에 참석해, 집회 도중 무대 옆으로 뛰어나와 준비해온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지씨는 긴급 출동한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태안의료원으로 이송됐으나 분신 기도 전에 농약을 마신 데다 화상도 심해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씨는 태안읍 조석시장내에서 `명화수산'이라는 횟집을 운영해 왔다.

이는 태안 원유 유출 사고 이후 세번째 희생자다.

지난 10일에는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서 이아무개(66)씨가 굴양식장이 기름에 오염되자 비관해 이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몸이 불편한 부인과 살면서 바지락을 캐고 낙지 등을 잡아서 파는 맨손어업을 해 생활했으며, 기름 사고가 나자 최근 “바다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 뭘 먹고 사느냐”며 자주 신세 한탄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저녁 7시30분께는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 김아무개(73·태안군 근흥면)씨가 음독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16일 오전 숨졌다.


태안 원유 유출 사고 이후 태안 주민들의 잇단 자살은 정부 당국의 긴급 지원대책이 미비하고 사고를 야기한 삼성중공업 등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주민들의 절망과 분노가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지난해 12월7일 이후 태안 주민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복구에 주력해왔으나, 사고난 난 지 1달이 지나며 어업이나 수산물 관련 업종에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주민들의 수입이 끊겨 이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상태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삼성은 사과하고 보상하라”는 구호를 외친 뒤 나무로 만든 삼성중공업 예인선단, 유조선 모형과 삼성제품 모형을 때려 부쉈다. 이들은 이어 어구 반납식을 열어 통발 등을 삼성그룹 앞으로 택배로 보내고 수산물을 폐기하기도 했다.

김남석(54·소원면 모항리)씨는 “자식을 키우듯 정성을 들인 양식장들이 기름범벅이 된 채 방치돼 있는 걸 보면 자살한 사람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문제빈 태안군 어민회장은 결의대회에서 “기름배가 터진 뒤 40여일이 지나 주민들은 돈 한푼없이 빈 쌀독을 바라보며 방제하는데 사고를 낸 삼성은 잘못했다는 사과 한 마디 안한다”며 “태안군민이 총궐기해야 살 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태안 주민들 “맨손으로 굴 까고 조개 캐 살던 사람 살 길이 끊겼는데 지원책 없어”

이날 집회에 참석한 무항3리 주민 국경호씨는 “처음보다 언론에서 외면하는 것 같고 보상이 나온다고 해도 증거 수집도 안되고 있는 것 같다”며 “증거 자료가 어디 있나. 영세 어민 처지에서 뭘 어떻게 증명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이충경(38) 의항리 어촌계장도 “지금 지역 주민들 입장은 절망상태로, 당장 수입이 없으니까 어떻게 살겠나”라며 “한달이 넘도록 아무 것도 나온 게 없다”고 말했다.

지영길(65) 천리포 어촌계장도 “맨손으로 굴 까고 조개 캐고 그렇게 사시던 분들 살 길이 끊겼다”라며 “돈 꾸어 살던 사람들은 이자낼 돈도 없어서 다들 죽지 못해 살고 있다. 한달이 넘도록 아무 대책이 없으니 처음에는 ‘보상되겄지’했던 주민들이 점점 열받고 절망하고 있다”고 잇단 자살 시도의 배경을 설명했다.

지씨는 “태안 주민 대부분인 굴 까서 벌어먹고 먹던 사람, 고기 잡아서 근처 횟집에나 팔던 사람들은 아무 할 일이 없다”며 “정부가 먼저 나서서 보상금을 주고 나중에 책임소재를 따져서 가해자쪽과 정리를 하는 게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정낙민(60) 모항리 이장은 “삼성에 대해 불매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분노를 쏟아냈다. 정씨는 “가해자 삼성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항의를 하려 해도 삼성 본관 건물과 대전 삼성화학 앞에 1년 내내 집회신고가 내려져 있어 집회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정씨도 “정부가 빨리 특별법을 제정해서 선보상을 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하던가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안유류피해투쟁위원회는 이날 “정부는 유류사고 특별법을 제정해 주민들의 피해를 먼저 보상하고 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의 중과실을 밝혀 무한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투쟁위는 또 “해양환경복원특별법을 만들어 해양환경이 완전 복원될 때까지 삼성중공업과 현대오일뱅크, 유조선사에 복원 책임을 묻고 지역경제 회생 대책을 시행해 주민이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삼성 “법적 책임 가려지면 이에 따라 성실히 대응하겠다” 원론만

한편 태안 주민들의 잇단 자살 시도 이후 삼성에 대한 공식 사과와 배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쪽은 난감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은 이번 사안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면서도 “법적 책임 소재가 가려지고 이에 따라 보상·배상 범위가 확정되면 성실히 대응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태안 주민들의 잇단 자살은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 사고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립서비스를 한들 무슨 소용 있겠나. 배상은 법적으로 다툴 문제인데,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사과라고 주민들 화만 돋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피해배상을 놓고 선주인 허베이스트리트와의 법적 공방을 벌어야 할 처지의 삼성으로서는, 섣부른 대응에 나설 경우 감당하기 힘든 피해 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공식사과와 적극적 피해배상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쪽은 “사고 직후 매일 1500~2000명씩 삼성 로고도 못 달고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며 “삼성중공업 상장은 사고 다음날부터 보름 이상 태안에 상주하면서 사고 수습에 전념했다. 지금은 복구가 먼저 아니냐”고 밝혔다.

프랑스 미국,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에 거액 배상 책임 판결

한편 지난 16일 프랑스 파리 형사합의법원 재판부는 1999년 12월 유조선 침몰사고를 일으킨 세계 4위 석유회사 토탈 등에 해양오염 책임 등을 물어 1억9200만유로(약 2770억원)를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법원은 토탈과 유조선 소유주, 관리회사는 기름 제거 등에 엄청난 비용을 쓴 프랑스 정부(1억5400만유로), 지역 의회, 환경 단체 등에 배상금을 나눠 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국 법원도 지난 1989년 알래스카에서 엑손 발데즈가 일으킨 원유유출 사고 피해에 대해 선주인 엑손사에 10여년간 2조원을 들여 정화작업을 벌이게 하는 등 오염 책임자에게 피해를 철저하게 배상하고 복구토록 한 바 있다.

<한겨레> 노현웅 김회승, 태안/송인걸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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