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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의문학풍경] 세계와 함께 호흡하는 한국문학

등록 2006-12-07 19:29수정 2006-12-07 19:44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국문학의 세계화, 어디까지 왔을까. 그 정도를 재는 기준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흔하게 떠올릴 법한 것이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 최근 몇 년 새 한국 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은 이런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정작 문단 내에서는 ‘노벨문학상 올인’에 부정적이다. 저변의 뒷받침이 없이 작가 한 사람의 노벨상 수상만으로는 말의 바른 의미에서 문학적 세계화라 이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비록 노벨문학상이라는 ‘수능시험’에서는 번번이 미끄럼을 타고 있지만, 최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는 뚜렷한 진전이 보인다. 무엇보다 잡지들의 원고 청탁 범위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라는 계간지가 있다. 지난 여름호로 창간되어 겨울호로 통권 3호를 기록했다. 이번호 <아시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여기, 누가 전쟁을 원하는가’라는 이름의 서남아시아 현지기획과 ‘아시아 문제작가들의 소설문법’이라는 소설란. 서남아시아 현지기획에는 레바논 언론인과 팔레스타인 작가, 그리고 세 사람의 이스라엘 작가가 참여해 전쟁 반대라는 한 목소리를 냈다. 아랍 쪽 문인들의 글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접한 바 있지만, 이스라엘 작가들의 반전 목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드문 기회다.

‘아시아 문제작가들의 소설문법’에는 우즈베키스탄 작가 알리세르 파이줄라에브의 단편 <약>과 박민규씨의 단편 <아스피린>이 실렸다. 서남아시아 기획과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 작가의 작품 역시 <아시아>가 국경을 넘어 직접 청탁해서 받은 것이다. 편집자가 별도로 주문을 하거나 두 작가가 사전에 상의하지도 않았는데,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 나온 점이 흥미롭다. <약>은 한 알만 먹으면 특정한 작품을 읽은 것과 동일한 효과를 지니는 알약에 중독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찾는 주인공에게 “대단히 죄송합니다, 손님. 우리 카페에서는 대중적인 애정소설이나 탐정소설만 취급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카페 종업원이 인상적이다. 소설의 결말은 축복이자 파국이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북해에서 문학약품의 원료를 담은 거대한 탱크가 파괴돼 온갖 문학작품이 바닷물 속에 용해된다. 주인공은 그 물에 몸을 던져 세상의 모든 문학작품을 마음껏 음미하고는 행복감 속에 익사하는 것이다.

<아스피린>에서 아스피린은 어느 날 갑자기 서울 하늘에 출현한 거대한 유에프오의 형태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외계의 우주선이 아닐까 두려워했으나 결국 백 퍼센트 순수한 아스피린으로 이루어진 물체로 확인된다. 외계인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소설은 성취감과 스트레스가 반복되는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이 아스피린의 출현으로 기우뚱, 흔들렸다가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특유의 우수 어린 문체로 그려 보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하는 문학 웹진 ‘문장’(webzine.munjang.or.kr) 12월호가 마련한 ‘세계의 젊은 작가 신작 특집’ 역시 주목할 만하다. ‘문장’은 체코 작가 파벨 브릿츠, 칠레 작가 알레한드라 코스타마그나, 아르헨티나 작가 빅토리아 카세레스, 독일 작가 탄야 뒤커스, 이스라엘 작가 싸미 베르두고에게 작품을 직접 청탁해서 원고를 받았다. 이 가운데 특히 이스라엘 작가 베르두고의 <다툼>과 아르헨티나 작가 카세레스의 <슬픔>에는 한국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을 지닌 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실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 인터뷰, 그리고 <현대문학>이 지난 3월호부터 싣고 있는 일본 작가 쓰시마 유코와 신경숙씨의 왕복 서한 연재 역시 세계 작가들과 함께 호흡하는 한국문학의 위상을 보여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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