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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안도현의 행복한 ‘먹는 타령’

등록 2006-09-07 18:48수정 2006-09-08 15:00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먹는 일은 거룩하다. 말할 나위도 없이, 먹어야 살 수 있는 까닭이다. 먹는 일은 더럽고 치사하다. 먹고 싶으나 먹지 못할 때 그것은 원초적 슬픔과 분노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는 일은 행복하다. 음식 재료며 양념이 우리네 혀의 미감을 구석구석 일깨울 때, 배 불리 먹고 나서 느긋한 포만감을 저작할 때, 세상은 살 만하다는 낙관론의 손을 슬며시 들어 주고 싶어진다.

웬 먹는 타령이냐고? 글쎄, 시인에게 한번 물어 보시라. 음식에 관한 시 다섯 편을 문학 계간지 <시에> 가을호에 발표한 안도현 시인에게 말이다. ‘기획연재’라는 갓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인의 음식 관련 시 연재는 한동안 이어질 모양이다.

“하늘에 걸린 쇠기러기/벽에는 엮인 시래기//시래기에 묻은/햇볕을 데쳐//처마 낮은 집에서/갱죽을 쑨다//밥알보다 나물이/많아서 슬픈 죽//훌쩍이며 떠먹는/밥상 모서리//쇠기러기 그림자가/간을 치고 간다”(<갱죽> 전문)

청록파 시절 목월의 시를 떠오르게 하는 단아한 시행들 속에 가난한 시절의 조악했던 음식이 달콤한 추억의 후광에 싸여 노래된다. ‘하늘에 걸린’과 ‘벽에는 엮인’의 대비, ‘햇볕을 데쳐’와 ‘쇠기러기 그림자가/간을 치고 간다’에서 보이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응은 슬픈 음식 갱죽이 상징하는 지난 시절의 아픔을 따뜻하게 다독이는 듯하다.

<갱죽>을 읽다 보니, 어느 해 겨울 모악산 자락 시인의 작업실에서 밤새 통음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 그가 손수 끓여 주었던 어죽이 생각난다. “국물이 끓어 넘쳐도 모르는 시락국 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통영 서호시장 시락국>)는 시가 이어지거니와, 그의 안내로 찾아가 맛보았던 서호시장 시락국 또한 삼삼하다.

어디 어죽과 시락국뿐이었겠는가. 그를 보러 전주에 가면 적어도 한번은 맛보게 되는 콩나물해장국과 모주, 가게 한켠에 간이 탁자를 놓고 판대서 ‘가맥’으로 줄여 부르는 가게 맥주, 그리고 그가 특히 좋아하는 육회와 전어…. 전주만도 아니었다. 오래 전 그를 포함한 일행 몇이서 겨울 여행을 떠난 남해에서 역시 아침 해장으로 먹었던 물텀벙이의 혀에서 그냥 녹고 마는 육질이며, 새벽 남광주 시장에서 맛보았던 매생이국의 부드러운 넘김. 아닌 게 아니라 그가 음식 관련 시를 연재하게 된 내력이 있구나 싶다. 음식에 대한 이해가 언어에 대한 감각과 필연적인 관련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닭개장의 재료와 조리법을 읊는 그의 거침없는 언어를 보라.

“무시래기와 배추시래기와 토란대와 고사리와 숙주나물과 대파와 그리고 잘게 찢은 닭고기 위에 조선간장과 고춧가루와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갖은 양념을 한 뒤에 어머니는 거기에다 술술 주문 외듯 밀가루를 뿌리고는 골고루 버무렸습니다”(<닭개장> 부분)

남은 시들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과 <병어회와 깻잎>에서도 음식은 푸근한 인정과 아련한 추억을 수반한다.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산문투로 길게 늘어지면서도 흔연스러운 리듬감이 흥과 긴장을 유지시킨다.

<병어회와 깻잎>은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에 딸려 나온 병어회 안주에 얽힌 소품이다. 병어회를 깻잎에 싸서 막 입에 넣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를 치며 달려온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째보선창이며 서호시장, 전주 왱이집으로 그냥 달려가고 싶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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