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문인 단일조직이 될 ‘6·15민족문학인협회’(이하 협회) 결성식이 30일 금강산에서 열린다. 지난해 7월 말 평양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에서 협회 결성을 결의한 뒤 1년 3개월여 만이다. 이번 결성식은 본래 지난 7월 말 있을 예정이었으나 한반도 남과 북을 강타한 수해 때문에 행사 직전에 갑작스럽게 무기 연기 결정이 난 바 있다. 남과 북의 문인들은 그 뒤 실무접촉을 통해 10월 말 결성에 합의했으나 이번에는 북의 핵실험 발표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결성식을 치르기로 했지만, 그 전에 또 다른 돌발변수가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갖은 난관을 뚫고 마침내 협회가 결성되면 남과 북의 문인들은 단일조직의 틀 안에서 여러 가지 공동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기관지가 발행되고 통일문학상이 시행될 것이다. 남과 북 작가들 사이의 합동취재와 상호 파견 같은 인적 교류 역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핵 국면에서 우려 섞인 시선과 일각의 비판을 무릅쓰고 결성식을 강행하기로 한 데에는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는 문학인들의 비상한 각오와 무거운 책임감이 자리잡고 있다. 문학을 통해 남과 북이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북한을 무대로 삼은 소설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음은 고무적이다. 정도상씨의 두 단편 <소소, 눈사람이 되다>(<창작과 비평> 2006년 봄호)와 <함흥·2001·안개>(<문학수첩> 2006년 여름호)가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김원일씨의 단편 <카타콤>(<문학과 사회> 2006년 여름호)은 북한 땅에 몰래 들어가 선교사업을 하는 남쪽 출신 목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몰려 사는 중국 동북 지역 거점도시 선양이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그려진다는 점은 이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소소, 눈사람이 되다>에서 주인공 충심은 선양의 코리아타운 격인 서탑 연변가의 안마집에서 일하고 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충심이 인신매매단에게 속아서 두만강을 건넌 뒤 농촌으로 팔려가 강제 결혼을 했다가 도망쳐 나온 신분임이 드러난다. 그는 한국으로 가기 위해 고생하며 모았던 돈을 조선족 동포에게 속아 빼앗기고,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주기로 한 한국인 ‘그’를 막막히 기다린다. <함흥·2001·안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함흥의 음악학교에 다니던 충심이 두만강을 건너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갈색의 대동강 맥주병에 나물죽을 담은 ‘곽밥’(도시락), 시원찮은 전력 사정 때문에 함흥에서 두만강변 소도시 남양까지 무려 닷새가 걸리는 열차 여정, 역 근처 장마당의 초라한 흥성거림 같은 북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정도상씨가 자의든 타의든 북에서 나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김원일씨의 소설은 압록강을 건너 북녘 땅으로 들어가는 남쪽 목사를 등장시킨다. 주인공인 강 목사는 고구려 고분으로 유명한 지안(집안)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압록강을 건너가 산 중턱 자연동굴에 마련한 비밀 예배소에서 북녘 신도들을 상대로 예배를 집전한다. 강 목사의 동굴 예배소는 “분단 이후 남한 목사님이 북으로 들어가 직접 개척한 지하교회로는 처음일” 것으로 기술된다. 소설 속 한 인물은 “지금의 북은 어떤 의미에서든 지하가 아닌 지상의 카타콤 바로 그 자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강 목사의 비밀 예배소는 카타콤 속의 카타콤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정도상씨와 김원일씨의 소설들은 남과 북이 문학의 이름으로 몸을 섞는 초기적 양상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남쪽을 무대로 삼은 북쪽 작가의 작품도 있을 법하지 않겠는가. ‘6·15민족문학인협회’를 통해 남과 북 사이의 문학적 상통과 습합에 가속도가 붙기를 기대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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