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근교에 있는 화산, 화산은 오악(五嶽) 가운데 서악(西嶽)으로 가장 높고 험준하다.
무협지 작가들은 산을 가지고 무림 문파의 이름을 짓기 좋아했는데 아마도 이렇게 함으로써 허구적 강호세계에 약간의 시적인 정취를 더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일엽편주를 타고 강호에 떴다” ‘장자’ ‘사기’에 등장한 강호는 말 그대로 대자연
점차 은자나 평민이 거한 인간세상 뜻해
세상의 불평 품은 지식인들이 협객으로 꿈 품으면서 강호는 무협지 속 상상의 공간으로 변모
점차 은자나 평민이 거한 인간세상 뜻해
세상의 불평 품은 지식인들이 협객으로 꿈 품으면서 강호는 무협지 속 상상의 공간으로 변모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 ⑨ 중국의 무협영화를 너무나 좋아한 어느 외국의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무협영화에 나오는 강호가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 생각해서 언젠가 한번 가보리라 결심했다. 그리하여 중국어를 조금 배운 다음에 서둘러 중국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만나는 사람마다 강호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이 외국 친구는 강호를 화산(華山)이나 샤오린쓰(少林寺)와 같이 유명한 명승지로 생각했던 것이다. <소오강호>의 감독 쉬커(徐克)는 이런 질문에 답하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은원(恩怨)이 있기 마련이고, 은원이 있는 곳엔 강호가 있다.” 짧게 이야기하면 사람이 있는 곳이 곧 강호라는 것이다. 정말 강호를 찾기 위해 중국까지 간 어리석은 친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호의 고수’에게 무술을 배우기 위해 중국을 찾는 사람은 지금도 많다. ‘동방불패’가 여자인 까닭은? 내가 자주 가는 한 중국서점이 있는데, 그 서점의 주인장도 그런 사람이다. 책을 사러 가서 우연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해서 대학도 중문과를 다녔고, 또 아주 일찍이 중국에 가서 의권(意拳)이라는 무술을 배웠으며 현재는 이런 저런 계기로 중국서점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서점을 운영하는 한편 의권 보급에 힘쓰고 있다. 그가 얼마나 ‘고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술에 대한 열정을 보면 아마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이리라. 그한테서 들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 무림계의 제2인자인 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길래 도대체 그를 죽인 당대 최고의 고수는 누굴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사모님’에게 목이 졸려 죽었다는 것이다. 황당해서 정말 한참을 웃었다. 역시 ‘동방불패’는 여자야! 영화 소오강호 속에서 동방불패도 결국 여자가 되어 강호 최고의 고수가 되지 않았는가. 물론 여자가 되는 바람에 영호충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었고 그리하여 자신의 이름과 달리 패하게 되었지만…. 이 ‘사모님’께서는 무술에만 관심이 있었던 남편에게 정이 달아나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나도 ‘강호’를 무척 좋아한다. 아주 가까운 분이 나보고 강호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가만히 돌이켜 생각하니 과연 그랬다. 강호란 말을 쓰거나 들으면 왠지 나도 모르게 호방해지는 낭만적 느낌이 드는 한편으로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그럼 나도 ‘강호’를 찾아 나서 볼까. 강호는 도대체 무엇이며 또 어디에 있는가.
강호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장자>다. “샘이 말라버린 다음 물고기가 뭍에서 서로 축축한 물기를 끼얹고, 서로 물거품으로 적셔 주는 것보다 강호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는 것이 낫다. 요임금을 성군이라고 칭송하고 걸왕을 폭군이라고 비난하는 것보다 양 쪽을 다 잊고 도와 하나가 되는 것만 못하다.” 여기서 말하는 강호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창장(長江)과 동팅후(洞庭湖)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대자연의 강과 호수를 지칭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기>에도 강호라는 말이 나오는데,. ‘화식열전’에 보면 범려가 월나라 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커다란 공을 세운 후에 “일엽편주를 타고 강호에 떴다.”는 기록이 나온다. 범려가 토사구팽을 면하기 위해 물러나와 대자연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말이다. 범려는 나중에 사통팔달한 도(陶)라는 곳으로 가서 장사를 해서 큰 부자가 되었고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자칭하였다. 그가 ‘화식열전’에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림계의 맹주’ 진용(金庸)은 일찍이 동서고금의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이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범려와 우칭위엔(吳淸源)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한때 그는 범려를 주인공으로 하는 <월녀검>이라는 단편소설을 쓴 일이 있는데 이는 역사서에 기록된 범려와 민간에 전해오는 전설을 혼합하고 상상을 가미한 일종의 ‘팩션’이다. 사실 범려가 일엽편주를 따고 강호에 숨어들 때 미인 서시와 함께 했다는 민간 전승의 이야기는 오월 지방에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호방하면서도 쓸쓸한 느낌
강호를 ‘오만하게 비웃다.’ 아침 해뜰 무렵 동팅후(동정호)를 바라보고 선 중국 소년.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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