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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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5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보건복지가족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동안, 보건복지가족부가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휴대전화 통화를 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다. 이동통신 업체에는 가회동, 관철동, 재동에서도 휴대전화가 안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가입자들의 항의와 보상 요구가 거세지자, 이동통신 업체들은 처음에는 “장비를 교체하느라 그렇다”고 둘러대다 결국에는 “청와대 경호처의 전파 교란 때문”이라고 실토했다. 청와대 경호처는 폭탄을 비행선에 실어 날린 뒤 휴대전화를 이용해 터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 ‘불협파’를 쏴 대통령 주변의 전파를 모두 차단하는데, 이 경우 휴대전화는 불통 상태가 된다. 자영업을 하는 전아무개씨는 “그날(3월25일) 오후 1시50분쯤 휴대전화로 멕시코 고객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끊기더니 2시간 30여분 동안 불통됐다”며 “이게 실용정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월20일 경찰청 외사과는 케이티(KT)와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주요 통신·포털 업체들의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빼내 판 해커들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해커들은 9개 통신·인터넷 업체의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빼낸 뒤 인터넷을 통해 팔아왔다. 이들은 해킹을 통해 빼낸 통신·인터넷 이용자들의 휴대전화로 ‘유명 발기부전 치료제를 싸게 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1억560만원어치를 팔기도 했다. 경찰은 “유출된 개인정보가 경찰이나 검찰을 사칭해 전화로 돈을 뜯어내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이용자 쪽에서 보면 이유야 어찌됐건 휴대전화 불통은 생업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이고, 잇단 개인정보 유출은 고객들을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더욱 야속한 것은 청와대나 해킹을 당한 통신·인터넷 업체들 모두 미안해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점이다. 실제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다음 날 브리핑에서 “행사장 인근 4개동에 걸쳐 휴대전화가 불통됐다는 내용은 장비에 대한 기술적 이해가 부족한 과장 보도였다”고 주장했다. 케이티 역시 “해킹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휴대전화 불통 경험자, 해킹을 당했다는 통신·인터넷 업체의 고객 쪽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인사 청문회 유행어대로 ‘귀신이 곡할 상황’이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전파를 교란시키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편을 줄여주는 노력은 필요하다. 또 국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면 미안해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옳다. 열 경찰이 한 도둑 막기 힘들다는 말에서도 보듯, 전산시스템의 보안을 아무리 강화해도 해킹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킹당한 것조차 모르거나 쉬쉬하면서 재발 방지 노력조차 안하는 것까지 용납될 수는 없다.
“저 때문에 국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대통령이나 사장이 되면 이 말 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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