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꽤 유망한 건축설계사무소의 설계팀에 근무하는 경선에게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마음에 맞지 않은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지만 팀장은 정도가 지나친 것 같았지요. 경선은 그 팀장 때문에 내가 정말 하찮고 쓸모없는 인간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낮에 팀장에게 심한 질책을 당한 경선은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던 경선은 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이 깼습니다. 이 야심한 밤에 어떤 인간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잠을 깨웠나보군요.”
처음 들어보는 술 취한 남자의 목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제발 전화 끊지 마세요. 자살하기 전에 단 한사람이라도 통화를 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홉 군데나 전화를 걸었는데, 다들 욕지거리나 퍼붓고 전화를 끊어버리더군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려고 하질 않아요.”
경선도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으나 남자의 말투에는 전화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절실함이 배어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전화통화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남자의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손에 땀까지 배어나왔습니다.
“저는 살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놈입니다. 이력서를 100군데 넘게 넣었는데 저를 받아주겠다는 데가 없어요.”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시면 안 될까요?” “박사학위까지 받은 놈이 공장이고 뭐고 이력서를 다 넣어봤습니다. 학력이 너무 높아 부담스러워 못 받아 주겠다네요. 어머니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 이 쓰레기 같은 막내 아들놈 때문에 무릎이 닳도록 폐지를 주우러 다니십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들풀이 없듯이 쓰레기 같은 사람도 없어요. 까짓것, 죽을 각오로 우리 힘껏 살아보자구요.” “….” “여보세요? 듣고 계세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제게도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저 같은 놈을 받아줄 직장도 세상에 한군데쯤은 있겠군요. 안 받아주면 길거리에서 좌판이라도 벌이죠. 저, 자살 절대 안 할 겁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멋진 분일 겁니다.” 경선은 별 싱거운 남자 다 본다는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맞아.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구. 자살을 말릴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며 경선은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던 경선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감과 여유가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김옥숙/소설가
“저는 살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놈입니다. 이력서를 100군데 넘게 넣었는데 저를 받아주겠다는 데가 없어요.”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시면 안 될까요?” “박사학위까지 받은 놈이 공장이고 뭐고 이력서를 다 넣어봤습니다. 학력이 너무 높아 부담스러워 못 받아 주겠다네요. 어머니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 이 쓰레기 같은 막내 아들놈 때문에 무릎이 닳도록 폐지를 주우러 다니십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들풀이 없듯이 쓰레기 같은 사람도 없어요. 까짓것, 죽을 각오로 우리 힘껏 살아보자구요.” “….” “여보세요? 듣고 계세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제게도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저 같은 놈을 받아줄 직장도 세상에 한군데쯤은 있겠군요. 안 받아주면 길거리에서 좌판이라도 벌이죠. 저, 자살 절대 안 할 겁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멋진 분일 겁니다.” 경선은 별 싱거운 남자 다 본다는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맞아.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구. 자살을 말릴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며 경선은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던 경선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감과 여유가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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