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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이 손잡고 도서관 오가는 길 집, 나무, 사람… ‘90분의 행복’

등록 2007-05-08 18:56

나의 자유 이야기 /

“띠리링~” 문자메시지가 왔다. 서대문 도서관에서 보낸 대출예약도서를 찾아가라는 문자다.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산 너머에 있기 때문에 걷기도 힘들고, 마을버스를 타더라도 빙 돌아가게 되니 여러모로 번거롭다. 그래도 수고로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아이에게 도서관 가는 길이 단순히 책을 빌리는 것만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요즘은 책을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고 또 집까지 배달해 빌려주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도서관에 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다는 걸 알려주고픈 작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가려면 우선 홍제천 다리를 건너야 한다. 물이 그리 많지 않지만 개천을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개천변에 핀 봄꽃도 구경한다. 골목길로 접어들면 작은 이층집들이 잔뜩 모여 있다. 늘 아파트에만 둘러싸여 살기에 단독주택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와 어떤 집이 예쁘고 맘에 드는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마당에는 어떤 나무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골목길 끝에 다다르면 도서관 앞까지는 언덕이다. 숨가쁘게 올라가 아이는 어린이실로, 나는 3층 일반자료실로 향한다. 최근에 20부작 공상과학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텔레비전에 한번 그 내용이 방영된 이후로 인기가 높아져서 대출예약을 하고 한 달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다 읽게 되는 책이라 빌리면서도 매우 뿌듯한 기분이 든다.

어린이실로 내려오니 아이가 만화며 잡지를 잔뜩 갖다놓고 키득거리며 읽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대부분의 책들이 만화로 그려져 쉽고 흥미롭게 읽기엔 좋다. 그래도 나로선 그림보다 글자가 많은 책, 기왕이면 고전을 읽었으면 싶다. 그러고 보면 나도 영락없는 대한민국 엄마다. 한꺼번에 네 권씩 대출을 받을 수 있어 고르는 아이의 손길이 무척 바쁘다. 심사숙고한 끝에 내가 골라주는 책 한 권, 자기가 고른 책 세 권을 빌린 아이는 책을 읽을 생각에 벌써 신이 났는지 펄쩍거리며 뛰어간다. 만화가 좋긴 좋은가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한결 수월하다. 동네 공터에 아름드리 목련이 함박같이 피었다가 진 걸 이제야 알았다. 아쉬워하는 내게 아이가 ‘다음해엔 꼭 잊지 않고 목련이 필 때 이 길을 다시 오자’고 약속하며 위로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골 떡볶이 가게에서 떡볶이를 샀다. 매운 걸 못 먹는 아이는 어묵국물을 더 좋아한다. 이렇게 한 시간 반쯤 걸리는 도서관 나들이, 가끔은 마을버스를 타는 반칙(?)도 하지만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의 여유다. 이 길을 늘 즐겁게 동행해주는 아이가 참 고맙다.

김현임/서울 서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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