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유 이야기 /
그날, 내 컴퓨터는 늘 자기 앞에 앉아 생각 없이 살아가는 내 삶에 제동을 거는 것이 필요함을 알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혼을 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 보았지만 아무래도 이놈은 오늘 하루 쉬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할 수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고 먼저 날마다 메신저로 보냈던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전달했다. 발로 뛰는 ‘발터넷’이라고 할까?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컴퓨터 소리 대신 ‘똑똑’ 교실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낯선 분이 계셨다. 다시 교실을 확인했다. ‘엇! 6반 선생님이 아니신가? 그때는 긴 머리셨는데….’ 대부분의 내용을 메신저로 전달하다 보니 서로 얼굴을 볼 기회가 없어 그새 머리모양이 바뀌신 선생님을 내가 못 알아본 것이었다. 순간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머리 바뀌셨네요. 더 잘 어울리시네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반가웠다. 나는 그렇게 그날 나와 마주친 모든 이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더니 자동으로 운동이 되었던지 하루 종일 서 있어서 늘 퉁퉁 부었던 다리가 오늘은 왠지 가뿐하다.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나니 또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오늘 보내야 할 메일이 있었다. ‘어떡하지? 그래, 오랜만에 편지를 써 볼까?’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써 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글씨 쓰는 법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일단 미술 시간에 쓰고 남은 종이를 대강 자르니 그럴듯한 편지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꾹꾹 손으로 눌러쓴 글씨로 칸을 채우고 나니 오랜만에 보는 활자가 어색하다. 그래도 단어 하나를 쓸 때마다 내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아마도 편지를 받는 사람이 이런 내 마음을 읽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위와 풀로 뚝딱 봉투를 붙이고 지갑 속 숨어 있던 빛바랜 한 장의 우표를 찾아 붙였다. 이제 우체통에 넣는 일만 남았다. ‘그래, 까짓것 오늘 마을버스 대신 빨간 우체통까지 걸어가 보겠어.’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불편함을 충분히 누리기로 했다. 불편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오늘 하루 동안 나에게 사람의 온기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이제 정말 나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퇴근하는 길에 기특한 눈빛으로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다음주에 한 번 더 컴퓨터에게 휴일을 줘 볼까?’ 컴퓨터가 나를 향해 웃는다.
신현주/서울시 동대문구 제기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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