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술 과외가 인기라고 한다. 2008년부터 바뀌는 대입 제도의 영향 때문이다. 내신의 등급제와 함께 대학들이 논술 시험을 확대하겠다고 하자, 당장 목전에 대입을 앞둔 아이들뿐만 아니라, 결국은 입시라는 거센 물줄기를 건너야 할 초등학생들까지 논술이라는 또 다른 입시 괴물 앞에서 무릎을 조아리고 있는 셈이다.
논술이 논리적인 글쓰기라면, 그 바탕은 당연히 독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논리적인 글쓰기라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어린 나이부터 논리를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재미는 제쳐두고 의무감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 초등학교 때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아이들도 중학교에 진학을 하면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는 아예 책과는 담을 쌓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수업 시간에 몰래몰래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는 아이를 발견할 때가 있지만 가까이 가 보면 대개가 무협 판타지 소설이기 일쑤다. 그런 경우를 당하면 기특함이 씁쓸함으로 바뀌고 만다.
최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청소년 출판물이 제법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교육청 차원에서 독서 매뉴얼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보급하기도 했다. 독서 이력철을 만들어 학생생활기록부에 독서의 성과를 반영하겠다고도 한다. 오죽 책을 읽지 않으면 저렇게 제도를 억지로 만들기까지 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강제로 읽히는 책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재미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더 크다.
책 읽기는 재미에서 시작해 의미로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미만을 위한 독서가 강조되다 보니, 입시와 관련된 독서만이 중요하게 되고, 아이들은 점점 책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그저 내 경험을 들려줄 수밖에 없다. 서울로 전학 온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기댈 데 없이 외로운 생활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이 책읽기였다. 만화에서 동화로, 동화에서 소설로 이어진 책읽기는 당시 나를 견디게 한 힘이었고 재미였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고 한다. 인생까지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아침조차 먹지 못하고 새벽부터 집에서 나와 등교를 해야 하고,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밤 늦도록 학교에서 입시 지옥에 시달려야 하는 아이들이, 그 막막한 외로움을 이겨낼 책 한 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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