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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엄마 손에 질질 끌려다니는 아이들

등록 2006-03-05 17:45수정 2006-03-06 16:37

아낌없이 주는 나무

주말에 제자들이 찾아왔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누구는 대학원에 가고, 누구는 해외 취업을 하고…. 새 소식이 봄꽃처럼 피더니, 대화 내용은 차츰 일상의 고민들로 옮겨갔다.

그 가운데 독서지도사인 한 제자는, 독서지도 자체도 늘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정서가 불안정한 어린이가 많아 더욱 힘들다고 했다. 예컨대 지금 가르치고 있는 2학년 아이는, 공부하러 오는 순간부터 다음 학원 갈 걱정만 할뿐 수업에 전혀 집중을 못한단다. 알고 보니 일주일에 학원을 열 군데나 다닌다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다 못해 그 애 엄마에게 학원을 줄여줄 것을 청해보았으나, “내 주위에 그 정도 안 보내는 사람 없다”는 짧은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비교와 경쟁…. 내 머릿속에는 한 풍경이 떠올랐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하루는 봄 소풍을 따라갔다가 아이와 엄마가 한조를 이루어 막대로 공굴리기 게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나는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들이 맹렬히 달려 나가 공을 굴렸고, 아이들은 단지 엄마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뛰고 있었던 것이다. 승부욕에 불탄 어떤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질질 끌고 가기도 했다.

‘왜, 무엇 때문에 저러지? 아이들 잔치 아닌가?’ 당혹스럽게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차례가 되었다. 나는 딸아이가 자기 막대기로 자기 힘으로 공을 굴리게 하였다. 멋대로 굴러가는 공을 거듭 제자리로 돌려가며, 아이가 반환점을 돌아 결승선에 도착할 때까지 보조 역할만 하였다. 그렇게 딸애와 내가 맨 꼴찌로 도착한 뒤부터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반전되었다. 어느새 공은 아이들 차지가 되었고, 엄마들은 옆 팀에 신경을 쓰는 대신 아이의 동작 하나 하나를 유심히 바라봐 주었으며, 꼬마들의 활약과 실수를 지켜보는 관중들 얼굴에는 정말로 넉넉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세상의 어느 부모인들 자기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무조건 끌고 남들보다 빨리 뛰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아이가 진정 자기 생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면, 머뭇대고 망설이며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풀씨들도 저마다 자신을 싹틔우는 봄날, 나는 아이에게 투명한 자기 자신을 살게 하는 대신 나의 불안과 욕망을 누덕누덕 입히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으로 가만히 돌아볼 일이다.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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