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로네 클라시코2001
[매거진 Esc] 이주의 와인 / 사진가 준초이의 ‘아마로네 클라시코2001’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오면 함께 일했던 제자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청춘들만이 가지는 고민을 한 보따리 풀어놓지요. 사진가의 길을 먼저 걸은 제게 해답을 찾으려는 겁니다. 딱히 제가 명답을 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다만 과거 뉴욕에서 사진가로서 살아갈 때 어려웠던 일이나 찍은 사진 중에 가슴에 남는 사진을 보여주곤 합니다. 한 제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진을 너무 좋아해서 늦은 나이에 사진학과를 다시 들어간 친구였지요. 졸업이 다가오자 여러 고민이 생긴 모양이었습니다. 결혼도 했기에 돈도 벌어야겠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도 찍고 싶고, 광고사진을 해야 될지,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는지 등…. 7년 전이었던 그때도 조용히 제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에 그 친구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포도주 한 병을 가지고 왔습니다. 평소 제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 친구는 알고 있었지요. 이탈리아 베네토의 체사리 가문에서 만드는 ‘아마로네 클라시코 2001’(Amarone della Valpolicella Classico 2001)이었습니다. 클라시코는 마치 우리네 간장처럼 진합니다. 동시에 어린 와인에만 있는 과일향을 버리지 않아 더욱 흥미진진하지요. 와인을 함께 마시면서 고민에 휩싸인 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전히 사진기를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기특했지요. 저는 곧 학고재에서 ‘백제’란 이름으로 전시가 될 백제유물 사진작업을 보여주었습니다.
빙그레 서로 웃으면서 사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도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클라시코가 생각 날 겁니다. 자연의 섭리가 그대로 녹아 있는 와인처럼 그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정리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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