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줄잇는 차관은 한줌의 권력층만 살찌워
“원조를 중단하면 이들은 나라를 떠날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나아질 것”이라는 한 지식인의 말
원조 행렬에 가담한 노무현 정권 귀담아 들어야
“원조를 중단하면 이들은 나라를 떠날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나아질 것”이라는 한 지식인의 말
원조 행렬에 가담한 노무현 정권 귀담아 들어야
얼마 전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하던 시기에 우연치 않게 나는 프놈펜에 있었다. 기자단이 놀랄 만큼의 환대였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이었다. 내가 프놈펜에 머물고 있는 동안 태국 총리와 룩셈부르크 대통령 등 서너 차례 외국정상의 방문이 있었지만 이번 한국대통령의 방문과는 비교한다면 초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달갑지 않은 나흘이었고 착잡한 나흘이었다. 전례 없던 대대적인 교통통제로 엉망이 된 프놈펜 시내와 건기의 땡볕 아래 동원된 아이들이 흘리던 구슬땀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아시아 저개발국을 상대로 한 남한외교의 우울한 단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지금 캄보디아의 경제성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차관과 원조, 섬유산업 부문의 해외직접투자 그리고 덧붙인다면 앙코르와트의 관광수입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꼬리표가 붙은 돈이건 상관없이 결국은 훈센의 집권 인민당을 위시한 한 줌 권력층의 아가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예컨대 지난 6월 세계은행은 캄보디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곱 개의 프로젝트 중 6400만달러 규모의 3건을 중단하고 이미 종료된 4건에 대해 1109만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로젝트와 관련된 43건의 계약이 실질적 부정과 관련되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계은행과 관련된 스캔들 뿐 아니라 캄보디아로 유입되는 차관과 원조의 60% 이상이 모두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정부수입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해외원조금은 말 그대로 독재정권의 일용할 양식으로 전락해 있다. 그 현실은 163개국 중 151위를 차지해 버마(미얀마)와 함께 아시아 최하위를 기록한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지수가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나라의 권력층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군부에 기반한 훈센의 잔혹한 반민주적 철권통치가 비결이다.
내가 프놈펜에서 만난 한 지식인은 공여국들이 캄보디아에 대한 차관과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차관과 원조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직 한 줌의 권력층을 비대하게 살찌우고 있으며 그들의 부정하고 부패한 권력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씁쓸하게 말했다. “차관과 원조를 중단하면 먹을 것을 잃어버린 인민당의 늑대들은 모두 캄보디아를 떠날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좀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결국 캄보디아의 경제성장이란 대다수 국민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권력층의 독점적 숫자놀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내전이 끝난 90년대부터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일본의 유무상 차관과 원조, 최근 급증하고 있는 중국의 천문학적인 차관과 원조는 독재정권과 결탁해 다만 시장의 선점만을 노리는 동시에 극심한 빈부격차를 부추기는 불온한 자금의 행렬일 뿐이다.
이 대열에 언제부터인가 남한이 끼어들고 있다. 이미 1억달러에 가까운 경제개발협력자금을 지원했다. 무역규모는 2005년 1억5000만 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미한 액수다. 중국과 일본, 미국, 프랑스를 따라가기는 역부족이다. 투자국 순위는 5위에 그치고 있다. 다만 20만명을 넘어 지난해 1위를 기록한 앙코르와트의 관광객 수만이 고무적이다. 이런 국가의 수반에게 최고의 환대를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60년대 이후 노우하우를 쌓아온 일본과 달리 초보적인 걸음마를 떼고 있는 남한의 대외차관과 원조가 캄보디아의 권력층에게 그만큼 매력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착복하기 월등히 수월한 관광부문에서 최고방문객 수를 기록한 나라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훈센 정권의 남한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환대는 이런 배경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걸 두고 “외국에 나오면 대접받는다”는 평소의 소회를 다시금 피력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접해야 하는 심정은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훈센과 그 밖의 독재정권의 핵심인물들을 두고 “캄보디아의 지도자들이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며 부러움을 표시한 발언에 이르러서는 캄보디아 사람들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의 삶이 목숨을 걸고 국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고 그런 점에 존경스러웠다고 한 발언은 남의 나라 역사에 대해서, 그것도 현대사에 대해서 그토록 무책임하게 발언할 수 있는지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훈센을 비롯한 권력의 핵심인물들은 모두 19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에 꼭두각시로 내세워졌던 인물들이고 1978년 이전에는 크메르루즈의 일원이었던 인물들이다. 더불어 베트남 괴뢰정권의 핵심을 차지했던 인물들이었으며 1996년 합헌적 정권을 뒤엎은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캄보디아의 어떤 사람들에게 그들을 존경한다는 남한 대통령의 발언은 수치심과 분노를 자극하는 발언일 것이다.
아마도 현실외교란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남한이, 그토록 오랜 기간 군부독재통치에 고통받아왔고 지난한 세월을 감내하며 민주주의를 향해 힘겨운 걸음을 떼어왔던 우리가 아시아의 가장 부정하고 부패하며 잔인한 군부독재정권을 지원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시장과 경제의 이름으로 그들의 이미 터질듯 부른 배에 달러를 우겨넣고 그들에게 외교적 축배를 들게 함으로써 남한이 걸어왔던 그 고통의 역사가 아시아의 또 다른 나라에서 재현되도록 고무하고 협력할 권리를 남한이 부여받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그 길의 종장은 결코 제국주의의 꿈을 이룰 수 없는 하위제국주의의 필연적 파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유재현/소설가
유재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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