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눈이 내려 길이 사라져 버렸다. 읽고 있던 책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를 덮고 집을 나섰다. 눈으로 뒤덮인 인적없는 길을 더듬거리며 빠져나간다.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 있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이 45년 만에 열려 다닐 수 있게 되었고, 한양성 성곽도 출입이 통제된 지 38년 만에 조금씩 열려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다. 북악산 기슭이 모두 개방되면 삼청동쪽 홍련사나 와룡공원에서 숙정문과 촛대바위를 거쳐 북악산 정상을 올라 서쪽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창의문에서 다시 인왕산까지 연결되어 사직공원으로 내칠 수도 있고, 다리품을 판다면 서대문 안산을 올라 모래내까지 걸을 수도 있다. 걷다 보면 길이 단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더러 휘파람 소리를 내는 북악산 성벽 길을 따라 자주 걷는다. 산책로는 부암동 뒷골을 가로지른다. 뒷골은 청와대 뒷자리에 있는 마을이고, 광화문에서 걸어 갈 수도 있는 곳이다. 광화문에서 청와대가 있는 쪽으로 돌아가면 인왕산 아래 청운동이다. 여기서 부암동을 가자면 청운동 꼭대기에 있는 자하문 고개를 넘어서야 한다. 자하문은 창의문이라고도 한다. 많은 이들은 차를 타고 자하문 터널을 오고가기 때문에 그 위에 창의문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동네 사람들만이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에서 내려 성곽으로 들어선다. 자하문은 왼쪽으로 인왕산, 오른쪽으로는 청와대가 있는 북악산 사이에 있는 잘록한 고개에 있으면서 서울의 중심부를 내려다보고 있다. 청계천의 물은 여기서부터 흘러내리고 있다.
고개 마루턱에 자하문이 있었던 터라 지금까지도 자하문이라고 널리 말하는데, 공식적인 이름은 창의문이다. 집이 오늘날처럼 없다고 하면 이곳의 풍경은 더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집들이 많아도 이곳은 나무가 많고 인왕산과 북악산이 곁에 있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의문을 나서면서 부암동이 시작되고 큰 길을 따라 내려가면 “인간을 구제한다”라는 뜻을 지닌 홍제천에 닿게 되고, 오른쪽으로 인조반정을 모의한 세검정이 가까이 있다. 홍제천은 북한산에서 발원한 후 남서쪽으로 흘러 한강에 흘러 들어가는 12킬로미터의 길이를 지닌 하천이다. 여기에 서대문구와 경계를 이루는 아름다운 홍지문과 홍제천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개천을 가로질러 다섯 개의 수문을 만들고 그 위에 방어벽인 오간대수문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있다.
부암동 뒷골로 들어가는 길목은 좁은 문을 떠올리게 한다. 자하문 고개를 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북악 산길인 스카이 웨이가 나온다. 그 길 들머리 왼쪽으로 나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서면 왼쪽에 김환기 미술관이 있고, 곧바로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안골을 거쳐 뒷골에 닿게 된다. 과거에 편입되어 있는 이런 마을은 언제나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의 시작은 숨을 조금 헐떡거리며 걸을 정도로 고통이 뒤따르는 것이고, 그것의 끝은 마을이 있지 않을 것 같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조붓한 산골 마을을 보게 되는 나름대로의 도취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정반대의 것으로, 기쁨과 고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뒷골로 올라가는 길은 걸어갈 수밖에 없는, 안골 마을의 골목이다. 조용한 안골의 끝자락을 숨가쁘게 넘어가면 적막한 뒷골로 내려가는 길에 맞닿게 된다. ‘고개 너머’라는 말은 걸어가는 이의 몸을 힘들게 하는 어떤 수사적 마력을 지니고 있다. 고개를 걸어서 넘어야 마을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은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매우 상반적이되 보충적인 것이 된다. 이런 몸의 경향이 숨어 있는 마을을 찾고 길을 걷는 매혹이다. 이 길로 가면 정말 마을이 있을까라는 의혹과 마을까지 힘들게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을 품고 걷게 된다. 걸을수록 마을이 생각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의혹은 걷는 이의 몸속으로 녹아 들어가 어떤 가치를 갖게 한다.
이윽고 마을에 다다르면 거의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을이 오롯이 내 안에 구석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곳을 내려다보면 뒷골에 있는 집과 마을이 지닌 아름다움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태어났고 존속하고 있는 뒷골이지만, 어느새 도시풍의 물결이 물밀 듯 다가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도심 속 뒷골이 오지마을의 풍경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완전하게 소유할 수 없는 것만을 사랑할 수 있다”고 프랑스의 소설가 프루스트는 썼다. 뒷골은 숨어사는 이들을 위한 구석이다. 계곡가에 붙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백석동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나오고, 그 아래에 비밀정원과 같은 백사실 계곡이 있다. 계곡 가운데에는 풍경의 짜임새가 잘 간직되어 있는 연못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있다. 한 나절 빌려 놀면 참 좋을 것 같은 곳이다. 낮은 산이 에두른 오래된 서울의 강북은 길을 향한 끝없는 대화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마을 전체가 다 보이는 이른 아침에도 좋고, 해 저무는 황혼녘에는 몽상에 흠뻑 취할 수 있어 좋다. 늙어갈수록 길을 잃고 있다.
안치운 / 호서대학교 예술학부 교수, 연극평론가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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