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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설] 지금은 병상에 누운 한 클라이머에게

등록 2006-12-07 14:46수정 2006-12-07 22:35

지금은 병상에 누운 한 클라이머에게…
지금은 병상에 누운 한 클라이머에게…
벼락을 맞듯이 산에 빠져버린 뒤
청춘의 절반을 설악산에서 보낸 그이
히말리야 산 이름들을 중얼거리다 보면
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떠올려지길
지난번 이 난에 나는 산행에 대하여 글을 썼다. 금요일에 글이 신문에 발표되고 이틀이 지난 주 일요일 저녁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오랫동안 함께 등반을 같이 했던 자일 파트너가 산에서 추락해서 지금 병원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전화통화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등반할 때 세심하게 모든 주의를 기울여 원칙대로 오르는 그가 떨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응급실에 그가 누워 있었다. 목뼈가 부러져 중추신경을 모두 다쳤다. 의사의 말로는 다 낫더라도 서서 걷기는 힘들다고 했다. 겨우 의식을 찾은 그에게 짧은 인사를 했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단 한 번의 시선 안에 그가 있을 뿐이었다.

모든 사물의 본연은 불안하다. 등반도 예외가 아니다. 위대한 클라이머의 유일한 선택은 산에 오를 것인가, 죽을 것인가이다. 등반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그를 보니 그가 등반하는 것말고는 모든 가치를 폐기하고 살았다고 여겨졌다. 그에게 산에 오르는 일은 자발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노동이었다. 그는 산에서 이 사람과 저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다. 산에서는 같이 오르는 이들의 어떤 계급도 그에게는 큰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사회의 경계 바깥에서 살았다. 그가 복종하는 것은 산, 산의 얼굴, 산의 목소리였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산을 올랐다. 산이 그의 삶 속에 녹아들었고, 그의 삶이 산에 중독되었다. 그가 짊어지고 산에 오른 것은, 한 시인의 싯구처럼, 제 삶의 무게였을 것이다. 나는 그가 언제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지 잘 모른다. 산행을 같이하면서 그는 벼락을 맞는 순간과도 같이 산에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저항도 불가능하고, 숨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산에 대하여 새로운 희망이나 기대가 있지는 않았지만, 어떤 이끌림에 의해서 줄을 같이 묶고 산에 오르는 동료가 되었다. 클라이머의 삶을 살기 위하여 그는 기자라는 직업도 버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산에 길을 만들었다. 이른바 개척등반을 많이 했다. 그럴수록 그는 점점 비물질적인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언제나 할 수 있는 산행이지만, 그는 등반을 삶의 유일한 시도로 여겼다. 클라이머로서 그는 사람이 아니라 산에 복종했다. 산 아래 길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지만, 산 위에서는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잃고 사랑에 빠져 살았다. 돌이켜 보면, 그는 청춘의 절반을 설악산에서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청춘을 설악산을 오르며, 설악산을 폭폭 앓으며 지내고 있었다. 바위를 오르며 하늘 가까이 가고 싶었고, 장엄한 토왕폭을 내려다보며 노적봉 꼭대기 나무에 줄을 묶어 대롱대롱 매달려 그대로 무화되고 싶었던 그였다. 이 지상에는 돌아갈 곳이 없다고 여기며 바위에서 수직의 춤이라고 할 수 있는 등반만을 즐겼던 그였다. 그리고 눈이 내려 산이 사뭇 하얗게 될 때 그는 세상의 평등을 꿈꾸었다. 바위 길에 핀 솜다리꽃을 밟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힘든 길로 발길을 돌렸던 시인이기도 했다. 어느 해 우리는 설악산 한 봉우리에 올랐다. 밤마다 정수리에 불 밝히면서 아래 세상을 굽어보는 큰 고개보다 훨씬 높은 곳이었다. 꽃처럼 피었다가 한 순간에 응고된 바위에서 입석대처럼 서서 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는 등반하면서 늘 심각했고 동시에 늘 웃었다. 같이 등반을 하면서 우리에게 어떤 어울림이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산에 오르는 클라이머는 대개 불편하지만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 등반하는 기술과 장비들은 매우 복잡하지만 산에 오르는 순간부터 은밀한 삶을 좋아한다. 산에서 바위는 큰 벽이다. 클라이머에게 바위는 오르지 말라는 방어벽이되 동시에 클라이머를 보호하는 보호벽이 되기도 한다. 그는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바위를 지각한다. 그리고 감각적으로 커다란 기쁨을 누린다. 외형적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지만, 클라이머는 바위가 지닌 따뜻함, 차가움, 에너지를 느낀다. 그는 바위가 오르는 이들에게 그 힘을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바위로 된 벽이 주는 무한한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그 벽을 오르기 위해서 춤추는 즐거움은 그의 삶 속에 공존했다.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클라이머는 산을 보는 시선을 지녔다. 그 시선은 점점 높아진다. 클라이머는 산에 대해서 차별적 시선을 지닌 이를 말한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등반을 했지만 타자를 배제하지도 않았고, 산을 독점하는 권력을 지니지도 않았다. 등반을 하고 싶은 이들과는 언제든지 줄을 묶었고, 그들을 하늘 가까이 높은 곳으로 데려다 주는 일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이웃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산행 흔적에 대하여 자랑하지 않았다. 숨길 줄 모르는 이는 사랑할 줄 모른다는 라틴어 경구처럼, 그는 산이라는 열정에 사로잡혀 고독했다. 이제 그는 누워 있다. 지난주 일요일 이후,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멀리서 괴로워할 뿐이다. 그것이 등반을 같이 했듯이, 지금 그와 함께 가는 것일 터이다. “히말라야 산 이름들을/중얼거리다 보면/내게도 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싯구절을 그가 떠올렸으면 좋겠다.

안치운/호서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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