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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최재봉의문학풍경] 문단의 싱어송라이터, 혹은 ‘카수’들

등록 2007-01-18 19:39수정 2007-01-18 19:45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

소설가 한강(37)씨가 음반을 냈다. 자신이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인 노래들을 직접 불렀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베이스, 첼로, 오보에, 바순, 퍼커션으로 반주를 꾸민 본격 음반이다.

처음부터 음반을 낼 생각은 아니었다. 악보를 쓸 줄도 몰랐으니까. 어느 날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가락에 노랫말을 붙여서는 흥얼거리다가 ‘완성’되었다 싶으면 육성으로 녹음을 해 두었다. 그렇게 해서 쌓인 곡들을 전문가가 채보한 다음 편곡을 거치고 악기 반주에 맞추어 녹음해서 음반으로 만든 것.

한강씨가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해 음반을 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의 그는 조용조용하니 워낙 말수도 적어서 그런 ‘용기’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보였던 탓이다. 청중 앞에서 자신의 소설을 낭독할 때조차 성대 아래로 잦아들 듯 모기 소리를 내는 그가 마이크 앞에서 목청을 높이는 장면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한강씨의 음반에는 모두 열 곡이 담겼다. 속삭이며 다독이는 듯한 노래들은 작가의 평소 성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음유시인처럼 읊조리는 방식이 주를 이루지만, 필요할 때는 내지르기도 한다. 아마추어다운 떨림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한 번 들으면 곧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쉬우면서도 정서적 환기력이 높은 곡들이다.

“나 좀 보세요/내 얼굴을 봐요/우리에게는/시간이 별로 없어요//창 밖엔 비가 내려요/온 세상 흠뻑 적시고/우리들 찢긴 가슴을/어루만져 주네요//내 눈을 봐요/내 얼굴을 봐요/안아주기에도/우리 삶은 너무 짧잖아요”(<내 눈을 봐요> 앞부분)

한강씨의 음반을 음반 매장에서 구할 수는 없다. 이 음반은 한강씨의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의 권말부록으로 끼워져 있는 까닭이다. 산문집에는 한강씨의 자작곡들과 그에 대한 ‘해설’(?)과 함께, 그가 좋아하는 노래들에 얽힌 사연이 담겼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부모님이 피아노를 사 주지 않자 종이 건반을 책상에 붙여놓고 연습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씨 덕분에 즐겨 듣게 된 임방울의 <쑥대머리>, 젊은 날의 어머니가 수줍은 가성으로 부르던 <짝사랑>, 그리고 산울림의 <청춘>, 동물원의 <혜화동>, 메르세데스 소사의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인생이여 고마워요)>….

“고마워라, 수호천사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는 노래들. 거기 실려다니는 시간들, 그리운 옛생각들…. 불현듯 등 뒤에서 우리를 불러 세우는 그 소리들.”


한강씨의 자작곡 음반이 이색적이기는 하지만 처음은 아니다. 1998년 소설가 이제하씨가 마찬가지로 자작곡 음반 <빈 들판>을 내놓은 바 있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랫벌에/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또한번 동백이 필 때까지/나를 잊지 말아요”(<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 부분)

경남 출신인 작가를 흉내내어 “뜨돌다 뜨돌다~”로 발음한 노래는 문인들이 모이는 술자리에서 곧잘 불려지기도 했다.

<송상욱 시>라는 개인 시잡지를 내고 있는 시인 송상욱씨 역시 자작곡은 아니지만 음반을 낸 적이 있다. <부용산> <황성 옛터> <애수의 소야곡> 등 애창곡을 소박한 기타 반주에 얹어 부른 음반이었다.

어디 한강 이제하 송상욱씨뿐이겠는가. 문인들은 대체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소설가 구효서씨나 성석제씨는 문단의 ‘카수’로 통한다. 소설가 하성란씨는 새침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윤복희의 <여러분>과 이정현의 <와> 같은 파워풀한 노래를 거뜬히 소화한다. 윤대녕씨가 호리호리한 상체를 살짝 튼 채 부르는 하남석의 <바람에 실려> 역시 일품이다. 이들의 노래를 노래방에서가 아닌 음반으로 들을 수 있는 날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최재봉/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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