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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올해의 ‘심장에 남는 사람들’

등록 2006-12-28 21:44수정 2011-08-05 22:49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평양이나 금강산, 또는 중국의 베이징이나 연변에 있는 북한 식당에 가면 접대원들에게 굳이 청해서 듣는 노래가 있다. <심장에 남는 사람>이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그 얼마나 많으랴/헤여진대도 헤여진대도/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기억속에 없는 이 있고/잠간 만나도 잠간 만나도/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단순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멜로디에 얹힌 절절한 노랫말이 그야말로 심장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분단된 겨레붙이의 안타까운 그리움까지 의미의 파장도 크고 넓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즈음이면 어쩐지 더 자주 귓가에 맴돌며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노랫말을 마음에 새기며 올 한 해의 만남과 이별을 돌이켜 본다.

우선, 10월 3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있었던 남쪽과 북쪽 문인들의 만남이 떠오른다.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이 계기였고, 남과 북의 문학인 100여 명이 함께했다. 비록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그 의미가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감이 있지만, ‘6;15민족문학인협회’는 분단 이후 60년 만에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문학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최초의 민간 단일 조직으로서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여러 곡절과 어려움을 뚫고 마침내 공식 출범한 이 조직 앞에는 물론 여전히 적잖은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그럼에도 이 조직이 장기적으로 남북한 문학의 교류와 협력은 물론 감수성과 상상력의 통일, 나아가 양쪽 사회의 통합과 궁극적 통일에까지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달 초에는 전업 소설가들과 영화감독들 사이의 이색적인 만남이 있었다. 장소는 대학로의 한 맥주집. 30대와 40대를 중심으로 소설가 20여 명과 영화감독 20여 명, 합쳐서 50명 가까운 인원이 회동했다. 이들이 무슨 ‘조직’을 꾸리거나 특별한 안건을 논의한 것은 아니었다. 장르는 다르지만 동시대의 예술인들끼리 그저 만나서 얼굴 보고 술 마시며 자연스럽게 말을 섞어 보자는 취지였다. 결과는 매우 흥미롭고 생산적이었던 듯싶다.

영화감독들 쪽에서 소설가들을 향해 먼저 ‘공격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요즘 한국 소설들에는 서사, 즉 이야기가 빠져 있어서 아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일본 소설을 보게 된다는 말로 소설가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소설가들은 소설가들대로 ‘나는 도저히 영화로 만들 수 없는 소설을 쓰고자 한다’는 식으로 맞섰다. 그렇지만 이런 날선 공격과 방어의 바탕에는 분명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깔려 있었다. 영화감독들은 ‘한때 문청(문학청년)’이었음을 다투어 고백했고, 소설가들은 당대의 우세종인 영화가 자신들의 삶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가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무엇보다 소설가와 영화감독이, 그 표면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대중의 요구 앞에 취약하기만 한 ‘약자로서의 예술가’라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가외의 수확이라 할 만했다. 한번 말문을 튼 양자의 술자리는 다음날 늦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남과 북의 문학인들, 그리고 소설가들과 영화감독들은 미련이 남는 대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기약할 ‘다음’이 없는 야속한 이별들도 있었다. 이름도 비슷한 소설가 박영한과 시인 박영근 얘기다. <머나먼 쏭바강>과 <왕룽일가>의 박영한은 세는 나이로 가까스로 예순에, 그리고 <솔아 푸르른 솔아>와 <취업공고판 앞에서>의 노동자 시인 박영근은 미처 쉰을 채우지 못한 ‘젊은’ 나이에 훌쩍 이승을 떴다. 노동자 시인은 물론, 체험과 취재를 거쳐서야 비로소 소설을 빚어낼 수 있었던 소설가 역시 ‘몸으로 글쓰기’의 원칙에 충실했던 정직한 문인들이었다. 이들의 시를 애송하고 소설을 탐독했던 독자들에게 이들은 정녕 심장에 남는 사람이 아니었겠는가.

최재봉/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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