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
이즈음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현실의 중력은 한없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환상적 시·공간이 예사로 등장하고, 현실을 배경으로 삼더라도 그 현실은 어쩐지 존재감이 희박한 인공 현실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 대중문화를 통해 접한 가공의 현실과 캐릭터들이 실재를 대신하기도 한다.
허구적 장르로서 소설 자체가 일종의 가상현실인 터에 소설 속에서의 현실의 퇴조와 비현실의 대두를 마냥 타매할 일만은 아니다. 비현실 또는 환상은 그것대로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즈음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보이는 ‘현실 지우기’는 현실에 대한 생산적인 통찰에는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새로 나온 문학잡지들이 그에 대한 평론가들의 비판의 소리를 담았다.
반년간 비평 전문지 <작가와 비평> 제6호에 실린 신형철(31)씨의 ‘만유인력의 소설학’이 대표적다. 이 글에서 신씨는 김영하의 <빛의 제국>과 강영숙의 <리나>, 박민규의 <핑퐁> 등 근자에 나온 세 장편을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논한다.
신씨는 우선 소설의 현실성을 △세계의 현실성 △문제의 현실성 △해결의 현실성 셋으로 나누고 각각의 소설에서 그 세 층위의 현실성이 관철되거나 기각되는 양상을 살핀다. 그가 보기에 주인공이 남한 정보당국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로 남기로 결정하는 <빛의 제국>의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인 해결이되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좌표를 뒤흔드는 해결이라고 하긴 어렵다.” ‘김영하식 현실주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해결의 현실성’이라는 이름으로 기대한 것은 그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식 현실주의다.”
주인공 탈북 소녀가 남한으로 오는 대신 또 다른(또는 영원한) 국경 넘기를 택하는 <리나>의 결말. “자본의 바깥은 없”으며 “리나는 탈북 소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임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매우 급진적인 ‘현실성’을 갖는 비관이다.”
<핑퐁>에 대한 비판은 혹독하다. 인류의 멸절을 선택한 결말이 극단적이며 무책임한 비관론이라는 것이다. “그(=박민규)가 선택한 몰락은 더는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를 향해 퍼붓는 신경질적 농담처럼 보이거니와, 이것은 심각한 의제를 던지는 몰락이기보다는 소비되는 몰락에 가깝다.(…)전자(=<빛의 제국>)가 김영하식 현실주의라면 후자(=<핑퐁>)는 박민규식 허무주의일 것이다.”
박민규 소설에 대해서는 <오늘의 문예비평>에서도 따로 특집을 마련해 권유리야씨와 권성우씨의 비판 글을 실었다. 박민규의 상상력을 ‘반(反)지구적 상상력’이라 규정하며, 거기서 보이는 저항의 제스처가 오히려 후기자본주의에 대한 투항과 타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권유리야씨의 지적은 신형철씨의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창작과 비평>에 실린 심진경씨의 ‘뒤로 가는 소설들’은 한유주, 박형서, 이기호 등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의 소설이 비록 형식적으로는 새로워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반성 없이 반복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무관심, 소설과 현실의 관계맺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허약함을 은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갓 서른을 넘긴, 그리고 사실주의에 회의적인 경향으로 분류되는 잡지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신형철씨의 현실(주의) 옹호의 변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소설의 주식(主食)은 여전히 현실이다. 주식을 거부하고 간식만으로 버티는 다이어트와 흡사한 글쓰기는 결국 영양실조와 아사(餓死)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소설이 한 시대의 공론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먹고 실재를 토해낼 수밖에 없다.” 최재봉/문학전문기자
<창작과 비평>에 실린 심진경씨의 ‘뒤로 가는 소설들’은 한유주, 박형서, 이기호 등 젊은 작가들의 소설집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의 소설이 비록 형식적으로는 새로워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반성 없이 반복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무관심, 소설과 현실의 관계맺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허약함을 은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갓 서른을 넘긴, 그리고 사실주의에 회의적인 경향으로 분류되는 잡지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신형철씨의 현실(주의) 옹호의 변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소설의 주식(主食)은 여전히 현실이다. 주식을 거부하고 간식만으로 버티는 다이어트와 흡사한 글쓰기는 결국 영양실조와 아사(餓死)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소설이 한 시대의 공론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먹고 실재를 토해낼 수밖에 없다.” 최재봉/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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