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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작은키’ ‘눈빛연기’ 김태희 비난하시는 여러분!

등록 2007-12-10 09:47

영화 ‘싸움’ / 씨네21
영화 ‘싸움’ / 씨네21
영화 ‘싸움’에서 ‘충분히 망가지지 못해’ 비판
‘소몰이식 평가’ 배우의 전체 수준 말아 먹어

최근 몇 달 동안 난 내가 김태희 팬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건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었으니, 난 김태희 팬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태희에게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배우에겐 내 취향을 자극하는 살짝 어긋난 듯한 느낌이 없다. 그럼 내가 왜 그랬던 걸까? 김태희보다는 소위 김태희 비판 또는 비난의 기계성에 미리부터 질려버렸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김태희의 사진이 올라오면 죽어라고 이 사람의 작은 키에 대한 욕설이 쏟아지는 거다.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난다. 언제부터 이 나라 사람들이 키 작은 것에 그렇게 매정했나? 이런 엄한 분위기 속에선 150㎝대인 나탈리 포트먼이나 위노나 라이더 같은 사람들은 데뷔도 못할 판이다. 둘째 김태희의 작은 키는 이 사람이 일하는 영상 매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제 키가 아니라 비율이니까. 결국 ‘작은 키’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드러난 외모를 먹어버리는 셈인데, 가장 얄팍해야 할 시각적 쾌락마저도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의 통제를 받는다는 게 무섭다. 자의건 타의건, 이런 식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은 조건만 적당히 조성된다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

보다 심각한 건 이 사람의 연기 비판이다. 일단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결코 메릴 스트립에 견줄 배우는 아니니까. 하지만 김태희 연기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김태희 연기 자체보다도 더 도식적이고 지루하다. 곧장 말하면 대부분 대한민국 연예 저널리스트들이 ‘연기’를 보는 방식은 대부분 진부하다. 김태희가 비교적 만만한 대상이기 때문에 그 진부함이 더 쉽게 기어나오는 것뿐이다. 특히 이들의 ‘눈빛 연기’와 ‘울음 연기’에 대한 페티시는 따분하기 그지없다. 다른 건? 아하, ‘망가지기’가 있다. 최신작 <싸움>에서 김태희의 연기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김태희가 ‘충분히 망가지지’ 못했단다. 어느 순간부터 망가지는 정도는 연기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어버린다. 그게 영화에 어울리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요새 예쁜 여자 배우들이 몸뻬 차림으로 양푼 비빔밥을 먹는 장면들이 공해처럼 넘쳐나는 것도 저널리스트들의 ‘망가지기’ 페티시 때문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싸움>에서는 김태희가 ‘망가져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예쁘고 우아할수록 더 좋다. 소심하고 평범한 남자 앞에 선 복수의 여신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반응은 ‘소몰이 창법’을 가창력의 유일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과 같아서 총체적으로 전체적인 배우 수준을 말아먹는다.

그런데 <싸움>에서 김태희가 어땠냐고? 난 그 영화가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건 김태희가 더 나은 ‘눈물 연기’나 ‘눈빛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연 여자배우에게 대우를 잘 해주는 감독을 만나 시에프로 특화시킨 연기 근육을 무리하게 학대하지 않는 캐릭터를 선택해 무리하지 않고 한 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충분한 거다. 적어도 지금은.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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