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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에 묻힌 아버지의 절규

등록 2006-06-27 16:54수정 2006-06-28 14:18

김옥숙/소설가
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오늘도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들썩거리는데 우리 집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정현아, 우야던동, 니는 데모 같은 거는 하지 말고 착실히 공부만 해야 된데이. 알겄나?”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시던 아버지가 파업에 참가하셨으니, 어머니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구 경북 지역의 건설노동자 2천여명이 연장을 버리고 파업에 돌입했을 때 아버지는 그 대오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일당은 거의 목숨과도 같다. 건설노동자들이 일당을 포기하고 파업을 벌인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권이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는 뜻이다.

아이엠에프 사태가 터지고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마흔이 넘은 아버지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잡부로 일을 하게 되었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식구들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연장통을 둘러메고 조용히 집을 빠져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 아릿한 슬픔이 밀려들곤 했다.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때,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고 공사장에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추락사고로 아버지 나이 또래인 아저씨가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추락 방지망만 있었더라도 아까운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저씨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손톱깎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말 ‘쓰메끼리’라는 단어를 그 무렵 알게 되었다. 한두 달씩 임금을 미뤘다 주는 것이 ‘쓰메끼리’라고 했다. 이 괴상한 건설현장의 관행 때문에 부도가 나든지 십장이 돈을 들고 도망가 버리면 받을 길이 없다고 했다.

“발주처부터 원청 하청 건설업체와 십장이 5단계, 6단계로 공사대금과 노임을 뜯어묵는 기라. 부실공사는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아이엠에프 때 깎인 노가다 일당이 그대로 아이가? 그카고 쓰메끼리 때문에 가정이 박살나는 집이 한 두 집인 줄 아나? 돈을 제때 못 받으마 카드 빚을 내서 살아야 되고, 그러다가는 신용 불량자가 되고 가정이 박살이 나는 기라.”

자조 어린 표정으로 말하던 형틀 목수 아저씨도 얼마 전에 가족들과 헤어졌다고 했다. 아버지가 식구들 몰래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속으로 흘려야 했는지를 깨달았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늙은 노동자, 아버지의 눈물을 먹고 나는 자라났던 셈이다. 막일꾼,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 노동자 내 아버지. 아버지의 상처와 흉터에서 꽃이 필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월드컵 응원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는 이 밤, 축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다. 차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말이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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