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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초롱초롱 빛나는 꿈들

등록 2006-03-26 18:59수정 2006-03-27 16:11

아낌없이 주는 나무

올해 내가 맡은 교과목 중의 하나는 ‘진로와 직업’이다. 아이들에게 ‘20년 뒤의 나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꿈을 써 보도록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신입생들이 대상이었다. 지금 열일곱 살이니, 20년 뒤면 서른일곱 살이 되는 때다. 한창 이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나이의 자신을 아이들은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써 낸 글을 보니, 우선 답답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20년 뒤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거나, 종합 병원 의사, 법관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편안한 직장에서 돈을 벌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거라는 풀이도 덧붙였다.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기성세대의 직업 의식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옮겨진 때문이리라.

물론 안정된 삶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내심 도전적이고 개성적인 아이들의 꿈을 기대하고 있었던 터라, 답답한 마음이 든 것이다. 차라리, 지금 아무 꿈도 계획도 없다고, 20년 뒤를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다고 적은 아이들의 글이 더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암담함의 바닥에서 그 아이들이 새 길을 찾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도 몇몇 아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사가 되어 최고의 맛집을 경영하고 있을 것이라든가,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꿈을 적었다. 그런 꿈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조금은 환해진다.

아이들의 글을 읽다가 나는 문득 지난해에 가르친 그 아이가 생각났다. 성어를 넣어 이야기를 쓰고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오늘로 비행 70시간이다. 마음이 긴장되고 한편으로는 들뜬다.’ 그렇게 시작한 그 아이의 글은 온통 내가 알지 못하는 비행 용어로 가득했다.

워낙 인터넷에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가득한 세상이고, 또 아이들은 그런 정보를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다 제 것처럼 만들어 내는 형편이라,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도 그런 종류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발표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그런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군데군데, 정말 비행을 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나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발표가 끝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 아이가 정말 비행에 마니아임을 깨닫게 되었다. 비행기 조종이 어릴 때부터 꿈이었고, 그래서 비행에 대한 자료 수집을 하고, 경비행기 조종 배우는 곳을 수소문해 비행을 하게 되었다며, 그 아이는 눈을 빛냈다. 평소에는 말도 별로 없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던 아이는, 비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신바람이 나서 내게 비행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 그 아이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 눈빛에는 제가 좋아하고 꿈꾸던 일을 찾아가는 기쁨이 가득했다. 어찌 그 친구뿐일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가 만나는 수많은 아이들은 모두 다 저 나름대로의 꿈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꿈이 아직 영글지 않아 드러내지 못할 뿐. 기성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은 행복하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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