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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중국 문화의 궁전 ‘홍루몽’

등록 2006-09-21 16:53수정 2007-04-26 16:01

베이징의 대관원.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큰 누이 원춘의 친정 나들이를 기념하여 만든 정원이지만 귀비 행차 이후 빈 정원으로 퇴락할 것을 우려하여 가씨 집안의 아가씨들을 거주하게 한다. 이 때 남자인 보옥이 유일하게 청일점으로 홍루 세계에 거주하게 된다. 베이징 대관원은 1984년 TV 드라마를 위해 세트장으로 만든 것이다.
베이징의 대관원.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큰 누이 원춘의 친정 나들이를 기념하여 만든 정원이지만 귀비 행차 이후 빈 정원으로 퇴락할 것을 우려하여 가씨 집안의 아가씨들을 거주하게 한다. 이 때 남자인 보옥이 유일하게 청일점으로 홍루 세계에 거주하게 된다. 베이징 대관원은 1984년 TV 드라마를 위해 세트장으로 만든 것이다.
“홍루몽은 소승, 금병매는 대승, 수호전은 선종”
“홍루몽을 읽어야만 중국 봉건사회를 이해”
중국인이라면 한마디씩 걸치는 걸작 중의 걸작
TV드라마 오디션에 10만명이나 몰렸다는데…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 ⑪

“고리키의 <40년>, <클림 삼긴의 생애>, 투르게네프의 <루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루쉰의 <아큐정전>, 마오둔(茅盾)의 <동요>, 조설근의 <홍루몽>- 이 책들은 정말 다시 읽어볼만한 책이다. 중국의 두부도 세상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이다. 세계 제일이다. 영원히 안녕!”

이는 한때(1930.9~1931.1)나마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던 취츄바이(瞿秋白)가 병 때문에 대장정에 참가하지 못하고 후방에 남았다가 국민당에 체포당해 총살당하기 전에 남긴 ‘최후 진술서’(<부질없는 이야기(多餘的話)>)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다. 역사의 ‘오해’로 어쩔 수 없이 공산당의 영도자가 되기도 했지만 그는 진정으로 문학을 사랑한 문인이었다. 그 글을 무슨 계기로 읽게 되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읽었던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어떻게 총살당하기 전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 책은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그가 죽음을 앞두고서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언급하였을까. <부질없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에게 매료되었기에 한없는 호기심이 샘솟았다. 그 중에서도 <홍루몽>의 명성은 일찍부터 들었을 뿐만이 아니라 중국책을 읽으면서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보았던 터라 궁금증이 더했다. 이 참에 한번 읽어봐? 그렇게 해서 나도 <홍루몽>과 인연을 맺었다.

총살전 최후진술에서 추천할만큼


최근에 홍루몽을 50회분의 TV 드라마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그 책을 처음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본 것이다. 이미 1987년에 드라마화한 적이 있는데도 이번에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자본을 투자해 다시 만든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재 인터넷을 통해 배우 선발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 열기가 정말 대단하다. 지난 달 21일 관련 사이트를 개통한 이후 9월17일 정오 12시 현재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은 2430만명을 초과했다. 공개 오디션에 참가 신청한 사람도 대략 10만명을 넘어섰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인 가보옥 역에 응모한 사람은 2만7천명, 임대옥 역에는 8800명, 설보채 역에는 6600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물론 일약 유명해지고 싶은 일반인의 욕망과 이를 이용한 제작진의 상업적 고려가 자리하고 있겠지만 홍루몽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도 일정한 작용을 했으리라.

가씨 일족 열두 미녀의 이야기

한편 전문가들은 홍루몽의 본래적 가치가 상업적으로 훼손될 것을 벌써부터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중국 고전소설의 걸작 중의 걸작이긴 하지만 소설을 두고 무슨 새롭게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중국인들은 너도 나도 홍루몽을 읽고 모두 한 마디씩 하는 것 같다.

베이징의 대관원.
베이징의 대관원.
홍루몽은 도대체 어떤 책인가. 이른바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라고 하는 금릉(지금의 난징) 출신의 가씨(賈氏) 일족의 열 두 미녀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주인공 가보옥과 그의 고종 사촌 누이 임대옥(금릉십이채 중의 한 사람)의 비극적 사랑과 그의 귀족 가문의 흥망성쇠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조설근의 집안은 청대의 강희제의 61년에 달하는 재위기간(1661-1722) 동안 황제의 총애를 받아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강희제가 죽고 옹정제가 등극하면서 공금횡령죄로 고발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완전히 몰락해버린다. 그리하여 어린 조설근도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하다가 하루아침에 비참한 가난 속으로 떨어져버리게 된다. 작품 속에는 이러한 조씨 집안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설근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먼저 왕궈웨이(王國維)와 같은 대학자는 욕망의 비극, 혹은 인생의 비극이라고 보았다. 우리나라 중국철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모우쫑산(牟宗三)도 일찍이 27살 때 홍루몽은 임대옥의 죽음과 설보채와 가보옥의 결혼, 그리고 가보옥의 출가(出家)라는 2막의 비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견해를 제기한 바가 있었다. 한편 그는 홍루몽은 소승(小乘)이고 금병매는 대승(大乘)이며 수호전은 선종(禪宗)이라고 주장했다.

홍루몽을 5번 읽었다고 했던 마오는 역시 그답게 홍루몽의 주제를 계급투쟁이라고 보았다. 그는 “홍루몽을 읽지 않으면 중국의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홍루몽이 중국 봉건사회의 백과전서라는 말이다. 사실 홍루몽은 중국 문화의 ‘궁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 중국적 문화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오의 관점과 유사하지만 그보다 덜 극단적인 관점으로 홍루몽을 반봉건사상을 설파한 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 주인공 가보옥은 남존여비와 입신양명을 강조하는 봉건사회의 이단아였다. 그는 용모와 두뇌가 모두 빼어난 남다른 소년이지만, “여자의 몸은 물로 만들어져 있고, 남자의 몸은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자를 보면 상쾌해지지만 남자를 보면 더럽고 속이 메스껍다고 느낀다. 그리고 과거 시험을 보고 공명을 차지하려는 자들은 모두 나라의 녹을 갉아먹는 벌레라고 욕을 하고 과거시험의 교재였던 사서오경과 같은 유가경전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애정의 비극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상식적이고 사실에도 부합하는 관점이지만 문혁 기간 중에는 부르주아적이라고 매우 혹독하게 비판받은 관점이다. 홍루몽은 방대하고도 풍부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관점으로 전체를 개괄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첫 번째의 관점에 가장 관심이 있다. 이미 홍루몽의 소극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모우쫑산의 관점은 흥미롭다.

한 바가지의 물만 취할 뿐이노라

여기서 잠시 가보옥과 임대옥 두 사람의 사랑의 선문답을 들어보자. 임대옥은 가보옥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가보옥도 임대옥을 가장 사랑하고 있지만 불안한 임대옥은 묻는다. “보채가 그대를 좋아하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이며, 보채가 그대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보채가 전에는 그대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이며 보채가 오늘은 그대를 좋아하지만 앞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보옥이 답한다. “그것이 약수(弱水.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 속의 강) 삼천리라 하더라도 나는 다만 한 바가지의 물만 취할 뿐이노라.” “바가지가 물에 떠내려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가지가 물에 뜨는 것이 아니고 물은 스스로 흐르고 바가지는 저대로 흘러가는 것뿐이니라.”, “물이 흐름을 멈추어 구슬이 가라앉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심(禪心)이 이미 진흙에 젖은 솜꽃이거늘 봄바람을 향해 자고새도 춤추지 않을 것이로다.”, “선문(禪門)의 제일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 “이 마음 삼보와 같도다.”

이런 두 사람을 두고 집안 어른들은 설보채를 가보옥의 배필로 맞이한다. 이 소식을 들은 대옥은 그동안 썼던 시고(詩稿)를 불태우고 죽는다. 그 순간 가보옥은 임대옥과 결혼하는 줄 알고 설보채와 결혼한다.(첫 번째 비극) 가보옥은 나중에 임대옥이 죽은 것을 알고 절망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는 설보채와의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기도 하고 과거 시험에도 응시해 합격하는 등 냉정을 되찾은 듯이 보였지만 결국 출가해버린다.(두 번째 비극) 그런데 문제는 이 두 비극을 낳은 근원에 모두 설보채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설보채가 나쁜 악인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도리어 그는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잘 내면화시켰던 이른바 ‘부덕(婦德)’을 갖춘 이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녀가 악녀라면 차라리 용서라도 할 수 있지만 용서할래야 용서할 것도 없는 바로 그 점이 천하의 비극이라고 모우쫑산은 말한다. 주자학을 정통으로 보지 않았던 훗날의 그의 입장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홍루몽은 중국 혹은 중국 문화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일찍이 조선시대 말기에 세계 최초의 번역본을 내놓기도 했던 우리가 막상 읽으려고 해도 현재 시중에서 완역된 번역본을 찾아보기조차 힘든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막연히 음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도 많다. 홍루는 기생이 사는 곳이 아니라 화려한 귀족 가문, 고귀한 규중 여성이 거처하는 저택이라는 뜻이다. 기생집은 청루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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