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일의 건강이야기 /
지난 1996년 6월22일 유럽축구선수권대회 8강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은 프랑스와 접전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결과는 5-4 프랑스의 승리. 네덜란드 국민의 60% 이상이 텔레비전 중계로 이날 경기를 지켜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네덜란드 남성 축구팬들 가운데 심장을 움켜쥐며 쓰러진 사람이 급격히 증가했다. 경기가 있던 날 심근경색과 뇌졸중으로 숨진 사람은 경기일 전후 각각 5일과 비교했을 때 51%나 증가했다. 신기한 것은 같은 날 프랑스에서도 같은 연구가 진행됐는데 프랑스에서는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사람이 평소보다 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다행증 효과’(euphoria effect) 때문으로 추측했다. 박빙의 승부에서 승리를 맛본 후 나타나는 환상적인 기분이 축구팬들의 심장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똑같이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본 뒤라할지라도 경기 결과에 따라 심장발작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다행증 효과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나타났다. 프랑스가 브라질을 꺾고 우승한 당일 프랑스인의 심장병 사망자 수가 뚝 떨어진 것이다. 이번 독일월드컵 기간 동안에도 국제축구연맹의 승인을 받아 위와 같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는데, 현재까지 볼 때 독일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심장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으면 카테콜아민과 같은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는데, 이 호르몬은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과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며, 궁극적으로 혈액의 점성을 높여 혈전(피떡) 생성 위험을 높인다. 결국 혈액순환장애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경기를 지켜보면서 스트레스를 달래려고 흡연과 과음을 함께 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은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심장병이 있는 사람들은 생중계보다는 녹화경기를 보거나, 경기를 보면서 술이나 커피 대신 물을 많이 마시라고 권고한다. 경기 시작 전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평소보다 한 두 시간 정도 수면시간을 늘리는 것도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지구촌은 월드컵의 마법에 취해있다. 하지만 경기결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심취하면 자신의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때다.
환경보건학 박사·환경과 건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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