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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개혁을 개혁하자, ‘조화사회’를 향해

등록 2006-11-09 18:37수정 2007-04-26 15:58

지난해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3차 전체회의 장면.  베이징/ 신화 연합
지난해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3차 전체회의 장면. 베이징/ 신화 연합
개혁개방 고도성장 이면에 빈부격차 심해지자 “체면있는 생활 누릴 사회보장 사회”
변방에서 우짖던 신좌퍄ㅏ 목소리 통치목표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대안 나올까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은 중국 ⑭

현대중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중국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조화사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지난 달 11일 폐막된 중국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 제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6기 6중전회)에서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의 몇 가지 중대 문제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정’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조화사회’라는 이념은 2002년 처음 중국 공산당 제 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제출되었고 2005년부터는 언론매체에서 부쩍 자주 거론되더니 이번에 중국 공산당이 추진해야 할 목표로 확립된 것이다. 지난 1978년 12월에 열린 11기 3중전회의 결의가 그동안의 좌의 오류를 바로잡고 개혁개방을 결정한 역사적 이정표가 되었다면 이번 6중전회의 결정도 개혁의 와중에서 야기된 여러 가지 불공평과 부정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총리도 의료·교육 실패 자인

조화사회란 화해사회(和諧社會)의 번역어로 쉽게 말하면 인간과 인간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라는 말이다. 조화가 되었건 화해가 되었건 간에 모두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러나 이러한 이념을 제출했다는 것 자체가 뒤집어보면 중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롭게 화해하며 지내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고도성장을 구가했고 또 구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의 차별, 연안과 내륙의 차별, 생태위기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또한 시장개혁이 심화됨에 따라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특히 의료와 교육 환경은 점차 악화되었다.

원자바오 총리와 같은 최고위급 인사가 매우 이례적으로 의료와 교육 개혁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자인했을 정도니 사정의 심각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13억에 달하는 인구 중에서 겨우 3분의 1에 못 미치는 사람만이 의료보험이 되고 설사 여기에 속한 사람도 50% 이상의 의료비를 자기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초등학교에서부터 각종의 잡부금을 징수하여 자녀교육을 포기하는 사례가 느는 등 교육문제도 심각하다. 그리하여 ‘개혁’을 개혁할 때가 온 것이다. 조화사회론은 이런 현실적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다. 한 전문가는 조화사회에 대해 “생산력 수준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체면 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보장이 되어 있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런데 후진타오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새 지도부의 통치이념으로 등장한 조화사회론이 이른바 ‘신좌파’의 관점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이 주목을 끌고 있다. ‘신좌파’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점은 일찍이 1993년~94년부터 존재했지만 ‘신좌파’라는 말은 1997년~98년에 널리 유행하였다. 그 계기가 된 것이 1997년 <천애(天涯)> 잡지에 발표되었던 ‘당대중국의 사상계의 상황과 현대성 문제’라는 왕후이의 글이다.(참고로 말하면 이 글의 간략한 초고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사회주의와 근대성 문제’는 먼저 우리나라의 <창작과 비평>(1994년 겨울호)에 발표되었다.) ‘신좌파’의 우렁찬 입장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의 발표를 계기로 중국의 사상계는 분화되고 ‘신좌파’와 자유주의의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8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건설과 사상해방이라는 일치된 지향점을 공유했던 지식인들이 분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분량도 두툼하고 고함량의 논문을 여기서 간략하게나마 언급하는 것도 벅찬 일이다. 따라서 그가 거기서 반현대적 현대성(모더니티)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관점을제기하고 있다는 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현대성이란 자본주의적 질서와 연관된 규정으로 이해되고 있고 서구에서 현대화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화였다. 그러나 현대 중국에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대중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현대화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적 목표로 삼았고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중국적 현대성의 주된 특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현대성이란 반자본주의적 현대성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 온갖 어려움과 곡절이 겪었다는 것이다. 좌우간 이 글은 중국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중국의 현대화는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자유주의자들은 당연히 경제의 시장화가 중국이 나아갈 유일하고 올바른 길이라고 본다. 그들은 정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장이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유재산의 신성불가침을 헌법에 명기하여 시민의 권리를 보호한다면 합리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왕후이가 볼 때 이것은 환상이다.

돌이켜 보면 왕후이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었다고 하는 1989년 천안문 사건이 무력으로 진압되자 많은 이들은 개혁 개방이 후퇴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오히려 개혁의 발걸음을 가속화시켰다. 따라서 천안문 사건을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체제수호파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체제파의 충돌이라고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다. 천안문 사건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시장화, 자유화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자유화에 동반되는 심각한 격차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는 두 층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중국 정부가 그동안 걸어온 길은 크게 보면 시장주의를 선도하고 있는 전자들의 소리를 채택한 것이었고 후자들은 “변방에 우짖는 새”였다. 그런데 이번에 조화사회론이 통치이념으로 채택된 것을 보면 그동안 체제 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자는 획일화를 하지 않는다”

근자에 행해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왕후이는 신좌파가 현 정권에 점차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설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삼농(三農)문제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원티에쥔(溫鐵軍)과 미국과 독일의 헌법에도 사유재산 신성불가침 조항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추이즈위안(崔之元)의 글들을 읽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른바 신좌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글은 모두 그가 주편으로 있는 <독서>라는 잡지에서 발표된 것이었다.

왕후이는 서양에서 발전한 현대자본주의가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또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도움으로 발전해온 점을 지적하면서, 커다란 전쟁과 환경파괴 없이 이 서구의 독특한 경제모델이 세계화될 수 있었겠냐고 반문하고 있다. 따라는 단순히 서양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중국적 대안(chinese alternative)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를 비롯한 많은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새롭게 아시아(일본, 인도 등)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 지난달 19일은 루쉰(1881~1936)이 서거한 지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왕후이는 원래 루쉰 연구자였다. 루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루쉰은 좌익작가였지만 좌익작가들과 활동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중국의 전통을 비판했지만 매우 우수한 고전학자였고, 서양의 진보 관념을 환영했지만 또한 거기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고. 그는 루쉰의 이러한 내적 모순을 통해 중국의 현대성의 문제가 마오주의자나 자유시장 찬양론자들처럼 단순히 전통적인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문제일 수 없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마오가 루쉰을 “현대중국의 공자”로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루쉰의 저작은 <홍루몽>과 함께 문화대혁명 기간에 아주 특수한 지위를 누렸다. 그렇지만 문혁이 종결되자 루쉰은 사상해방의 하나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도 다른 한편 신화화된 루쉰이 문제가 되었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나도 그의 작품을 읽기 싫어한다는 중국인을 몇 명 접한 적이 있다. 이유는 너무 각박하다는 것이다. 그가 루쉰을 만난 것도 이렇게 루쉰을 회의하는 분위기 속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중국 역사와 현실에 대한 루쉰의 깊은 통찰, 한 지식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어두운 기억에 대한 발굴, 지옥과 천당의 기운이 혼합되어 있고 절망과 희망이 뒤엉켜 있는 루쉰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버렸다고 한다. 그런 루쉰이 일찍이(1908) “나쁜 소리(惡聲)”로 꼽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러분은 국민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러분은 세계인입니다”라는 말이다. 이런 말이 왜 나쁜가? 모두 인간의 자아를 멸하고 독특한 개성을 갖지 못하게 획일화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일찍이 공자님도 말하지 않았는가. “군자는 조화를 도모하지 획일화를 하지 않는다”고. 조화사회 이념이 과연 중국을 과연 더 조화롭고 화해로운 사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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